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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천성 신독장애 증후군(先天性愼獨障碍症候群)

 

 

I.

우리는 흔히 초기불교의 대표적인 수행법은 팔정도이고, 대승불교의 대표적인 수행법은 육바라밀이라고 말한다. 그 육바라밀 중에 요즘은 특히 인욕바라밀을 자주 떠올린다. 인욕바라밀은 대승불교에서는 보시바라밀을 제외하고는 어쩌면 가장 선양되는 바라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반야부》에 속하는 《금강경》 제14 <이상적멸분>에서도 여래의 인욕바라밀에 대한 가르침(yā Tathāgatasya kṣāntipāramitā saivāpāramitā.)이 베풀어지거니와, 반야바라밀을 설하되 주로 보시바라밀을 예로 들어 모든 가르침을 전개하다가, 보시와 다른 바라밀로는 유일하게 인욕바라밀이 선택되어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실로 《금강경》이 지계∙정진∙선정 바라밀을 언급하는 것은 보기 어려운 것이다.

 

그리고 《법화경》 제10 <법사품>에서는 법사가 갖추어야 할 여러 조건을 들고 있으니 “자비는 여래의 집이고 인욕은 여래의 의복이요, 빈 것[空]이 여래의 자리”라고 하면서, 입어야 할 여래의 옷으로서 ‘인욕’을 들고 있다. 장행(長行)부에 가면 “약왕이여, 여래의 옷이란 무엇이냐. 비상한 인욕의 자상함이 실로 약왕이여, 여래의 옷이다. 그것은 그 양가의 아들 혹은 양가의 딸이 몸에 걸쳐야 할 것이다.”라고 자세히 설해져 있다.

 

이처럼 보살이나 법사로 대표되는 바람직한 불자상에는 반드시 인욕이라는 덕목이 강조된다. 알다시피 인욕은 그 원어가 크샨티(kṣānti)이니 ‘인내’의 의미이다. 단순히 욕(辱)만 참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나쁜 것에의 유혹과 덜 좋은 것에의 꼬드김에 넘어가지 말고 참아야 함’을 전제하고 있는 요청이다. 그리고 좀 더 확충해서 참아야할 것을 열거한다면, ㉮일반인의 경우, ㉯수행자의 경우, ㉰보살의 경우로 나누어 살펴볼 만하다.

 

그래서 ㉮ 일반인의 경우는 ㉠ 악업에 대한 유혹을 참아야 하고, ㉡ 사랑하는 자와 헤어질 때의 슬픔을 참아야 하고, ㉢ 원수 맺은 자와 만날 때의 미움을 참아야 하고, 그리고 ㉣ 약자에 의해 제기된 모욕감을 참아야 한다.  그리고 ㉯ 수행자의 경우는 ㉠ 삿된 길에의 유혹을 참아야 하고, ㉡ 수행과정의 장구함에서 오는 지루함을 참아야 하며, ㉢ 특히, 선정 속에서의 긴장감을 참아야 한다. ㉰ 보살의 경우는 ㉠ 다른 문화에의 거부감, 이질감을 참아야 하고, ㉡ 교화 행위에 대한 위해를 저항하지 말고 참아야 한다.

 

 

II.

이렇게 부처님 가르침 속에서 참는 것을 배우다 보니, 그래도 세월이 가면서 젊었을 때보다는 잘 참게 된 것 같다. 누군가는 ‘나이 들어 화낼 힘도 없으니 참을 수밖에!’ 하며 자조할 줄 모르나, 인내는 밖으로 드러나는 행위가 아니라, 내면의 평온함이 핵심이어서, 사실 신체의 근력과는 그리 관계가 없기도 하다. 그래서 앞서 든 《금강경》에서도 칼링가 왕이 인욕선인의 살점을 한 점씩 도려낼 때조차도, 무엇보다 선인의 내면에는 분노의 상이 일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 것일 테다.

 

그런데 요즘은 참으려 해도 참으로 참기 어려운 일이 있다. 자주 하는 이야기지만 “알면서 거짓말을 하고도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자가 저지르지 못할 죄악은 없다.”는 부처님 말씀에 나오는 그 “알면서 거짓말을 하고도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자” 때문이다.

 

잘못이 발각되면 일단 창피해 하며 얼굴을 가리는 것이 또한 보통 사람일 것이다. 그런데 잘못이 확정되어도 창피해 하기는커녕 적반하장하며, 명백한 거짓말 명백한 잘못을 잘못이라고 여기지 않고 반성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의 존재를 참아내기가 참 어려운 것이 요즘 나의 문제이다.

 

“알면서 거짓말을 하고도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자가 저지르지 못할 죄악은 없다.”에서 “저지르지 못할 죄악은 없다.”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가 궁금했는데, 이런 경우가 있다는 방송을 본 듯하다. 곧 자신의 주문에 점원이 바빠서 즉시 응대를 못했다고 한다. 그러자 그것을 자기 무시라고 판단하여 살해했다는 사건이 메스콤에 흘러나오는 것을 본 듯한데 바로 이런 맥락이었다.

 

III.

조선 시대 유학자인 율곡 이이 선생은 한평생 ‘신독(愼獨)’을 생활화 했다고 한다. 신독이란 혼자 있을 때 근신하는 자세를 말하는 것일 테다. 최소한 혼자가 되어 자신과 대면할 때는 진실해야 함을 요청하는 자세이기도 하다. 그래서 혼자일 때 잘못된 생각 잘못된 짓을 삼가는 것과 더불어, 혼자일 때만큼은 이미 저지른 잘못이 있다면 부끄러워는 할 줄 알아야 함을 당연시 하는 자세일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 그런 신독이 선천적으로 불가능한 사람도 있다고 한다. ‘선천성 신독장애 증후군(先天性愼獨障碍症候群)’이라 이름 붙일만한 질병을 앓는 사람인 셈이다. 그런 사람의 특징은 대표적으로 거짓말을 잘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의 특징은 거짓말을 하고도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 중에도 간혹 이런 ‘선천성 신독장애 증후군(先天性愼獨障碍症候群)’을 앓는 사람이 있어서 문제이다. 왜냐면 성공한 사람들에게서 파생되는 피해의 확장성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선천성 신독 장애 증후군 환자가 아닌가하고 합리적으로 의심되는 인사가 매일 횡행(橫行)하는 것을 매스콤으로 대하자니 참으로 참기 어려운 마음이 일어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어서, 그간 부처님이 당부하신 인욕의 가르침을 통해 어느 정도 쌓았던 내공마저 물거품으로 돌아가는 듯하여 더욱 참기 어려운 마음을 여러 차례 경험했던 것이다.

 

IV.

그런데 이 모두를 반전시키는 기억이 떠올랐다. 1980년 봄 광주에서는 군사정권에 의해 특히 대학생들을 시국사범으로 몰아 색출하여 처벌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자행되기도 했다. 상황이 탄압으로 수습되고 학사일정이 정상화 된 것은 그해 가을학기 부터였다. 나는 고익진 선생님을 찾아뵙고 광주에서의 단상을 들을 수 있었다. 그해 봄에 선생님은 광주에 계셨던 것이다. 그 난리통 속에서 특히 학생들이 겪은 탄압에 그야말로 ‘참을 수 없는’ 울분을 느끼셨다고 한다. 그래서 어찌하셨냐고 여쭈었다. 그때 선생님은 수색조들을 피해 절(광륵사)로 도망쳐 온 학생들을 모두 안전한 곳에 피신시키는 일을 하면서 분노를 누그러뜨리고 인욕을 지킬 수 있었다고 말씀하셨다. 내 기억에는 광륵사는 광주의 수원지 아래에 위치해서 지하 수로가 근처에 있었고, 그중 폐쇄되어 안전한 수로를 알고 있으셔서 그곳에 학생들을 피신시켜 안전을 도모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으셨다고 하셨다.

 

아마도 선생님은 ‘복리(福利)의 극대화’를 염두에 두신 것 같았다. 선생님은 원래 성정이 정의로운 분이셔서 불의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는 분이셨다. 약자가 약하다는 이유만으로 구타당하는 것을 보면 즉시 팔을 걷어붙이시는 분이셨고, 기숙사 사생장을 하실 때는 부당한 요구를 하는 사생이 칼을 들고 들어와 위협하는 상황에서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으셨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런 분이라면 당시의 시국에서 과격한 방법으로도 저항할 수 있는 분이셨다. 그러나 이미 그때 선생님은 불자이셨고, 교수이셨다. 아마도 어떤 상황에서 어떤 행위를 선택하더라도 그 선택의 기준은 복리의 극대화이니, 당신을 포함한 모두의 행복과 이익에 가장 기여할 수 있는 방향을 선택하시면서, 분노를 잠재우고 인욕을 성취하셨던 것으로 느껴진다. 선생님에게 있어 그 방법은 바로 절로 도망 온 학생들을 안전하게 피신시켜 주는 것으로 나는 지금 해석한다.

 

돌이켜 생각하면 나도 그 80년의 서슬 퍼런 군사정권시절에, 차를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 파계사(把溪寺) 성전암(聖殿庵)에 기도를 하러 간 적이 기억난다. 그곳에도 이른바 시국사범들이 절에 숨어든다고 하여 경찰들이 색출하러 왔던 것이다. 하필 나는 주민등록증 학생증을 당시 모두 지참하지 않고 있었다. 연행되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나는 낌새를 알아채고 뒷산 높은 곳으로 일단 피신하자 싶어 막 움직일 참이었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당시 주지셨던 철웅 큰스님이 경찰을 타일러 내려 보내시는 것이었다. 철웅 스님이 나를 숨겨 주신 셈이었으니, 만일 그때 스님이 그리 해주지 못하셨다면, 내가 오늘 불교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는 보장은 또 어디 있겠는가 싶다.

 

선생님과 스님의 조처가 인욕이었던 것이다. 주어진 상황에서 복리를 극대화 하는 선택지를 택하여 온건하게 움직이시는 모습이 인욕행이라고 나는 해석한다. 그래서 작금의 분노감에 대해서도 화만 내고 있을 것이 아니라, 복리의 극대화라는 원칙에 입각해 온건한 행동에 나서야, 인욕의 내공을 회복할 수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나와 가족에게 현실적으로 어떤 피해도 일어나지 않으며, 나아가 불교 공부에 어떤 장애도 끼치지 않으면서도 분노의 원인을 시정할 수 있는 묘안을 궁구하여 실행에 옮겨야겠다고 방향을 잡았다.

 

그리고 며칠 정도는 좌선시간의 화두를 그것으로 하여 답을 얻어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다. 그러면서 비로소 다시금 이전의 마음의 평정을 얻었다. 그리고 오히려 그 인사를 메스콤에서 대하면 최소한 ‘아무쪼록 상황이 어쩔 수 없어 그렇게 하고 다니더라도 혼자가 되었을 때는 늘 반성하고 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람이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되내어 본다.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자가 진정한 전쟁 승리자이다.”(<<우다나>> <<상가마지경>>)라고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올해 봉축일에는 이를 근거로

“분노와의 싸움에서 인욕하는 자가 진정한 전쟁 승리자이다.”라는 말씀을 떠올리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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