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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교수소개

인터넷 불교 대학 마하나와 아슈람 열 숟가락 운동
마하나와 아슈람 최봉수 책임교수의 논문

7. 논 문

 

1) 長尼柯耶연구: 동원논집 (동국대 대학원생 논문집) 1집, 1988. 2.

<개요; 다섯 부분으로 이뤄진 팔리 니카야 중에서 첫 번째인 장 니카야를, 편찬 체제에 내재된 의도를 밝히는 것을 중심으로 하는 논문이다. 이 논문은 저서 중 “원시불교와 형이상학”에 포함된다.>

 

2) 팔리 니카야의 意成身說과 三界 三神變說에 대하여
: 한국불교학(한국 불교학회 논문집) 13집, 1988. 11.

<개요; 팔리 니카야를 통하여 정신과 육체의 성질 및 불교적 세계관에 대한 이해를 추구한 논문이다. 특히 주요 팔리어 술어를 산스크리트어로 치환해서 고찰하므로써 팔리어와 산스크리트어와의 관계도 아울러 드러낸 논문이다. 이 논문은 저서 중 “원시불교와 형이상학”에 포함된다.>

 

3) 三科說의 연기론적 이해: 한국불교학 14집, 1989. 11.

<개요; 산스크리트어와 팔리어 자료에 나타난 온・처・계 삼과의 교설에 대해 연기론적인 이해를 시도함으로써 연기설이 초기불교를 대표하는 교설임을 규정짓는 논문이다.>

 

4) 팔리니카야와 한역아함의 상호보완성 연구
: 경전읽기모임논문집(팔리 대장경 우리말 옮김 논문모음집Ⅰ), 1990. 4.

<개요; 팔리어로 된 원전을 우리말로 옮기려 할 때에 반드시 한역 아함도 고려하지 않으면 아니 됨을 100 여 가지 예를 통하여 논증하고 있다. 특히 이 작업을 위해서는 산스크리트본 구사론에 실려 있는 산스크리트문 아함 경설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논문은 저서 중 “원시불교 자료론”에 포함된다.>

 

5) 원시불교의 悟의 구조: 보조사상 (보조사상 연구원 논문집) 4집,1990. 10.

<개요; 팔리어 원전을 통해 원시 불교와 같은 원초적인 형태의 불교 속에는 깨달음이란 어떻게 설해지고 있는가를 경전 표현을 중심으로 살핀 논문이다. 그리하여 종적으로 3 단계의 점진적 깨달음의 과정이 내재되어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 논문은 공저 “깨달음 -돈오인가,점오인가-”에 실려 있다.>

 

6) 원시불교의 五眼說에 대하여: 한국불교학 15집, 1990.11.

<개요; 역시 팔리어 원전을 중심으로 원시불교의 논리적 특징에 대해서 고찰한 논문이다. 그리하여 원시불교와 같은 불교의 논리가 바로 전제 또는 명제 또는 공리에 해당하는 것에 집중되어 그런 것의 근본적인 전환을 요청하는데 있음을 밝혔다. 이 논문은 저서 중 “원시불교와 형이상학”에 포함된다.>

 

7) 對法論에 대한 원시불교적 비평의 서설: 한국불교학 16집,1991.11

<개요; 아비달마 논서들에 대한 바람직한 접근의 자세는 무엇인가를 원시불교 경전 속에서 관련 언표를 찾아내어 고찰했다. 이 또한 비교적 철저히 팔리어 원전에 입각해서 쓰인 글이다. 이 논문은 저서 중 “부파불교 원전의 이해”에 포함된다.>

 

8) 원시불교에 있어서 心・意・識 3法의 관계성 고찰
: 가산학보(사단법인 가산불교문화연구원 논문집) 1집, 1991.11.

<개요; 산스크리트본 구사론과 산스크리트본 구사론소 등을 비롯한 아비달마 문헌을 참고 하면서 팔리 니카야에 설해지는 마음에 관한 교설을 집중적으로 연구한 논문이다. 이 연구를 통해 心→意→識이라는 순서로 전개될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되면서 아울러 그 각각의 개념에 대해서도 ‘志向’→‘意志’→‘識別’이라는 규정을 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이 논문은 저서 중 “불교정해, 아함경 여설”에 포함된다.>

 

9) 우주 및 역사 전개의 動因으로서의 業의 이해
: 백련논집(백련불교 문화재단 논문집), 1992. 1.

<개요;팔리 니카야와 한역 아함과 산스크리트본 구사론 등에 입각하여 불교의 우주론에 관해 접근한 논문이다. 그리하여 인간의 역사 뿐만 아니라 우주의 생성과 전개와 소멸까지도 중생의 의지적 활동인 업에 의하여 성립하는 것임을 논증하고 있는 논문이다. 이 논문은 저서 중 “아함겨 여설”에 포함된다.>

 

10) 金剛經 羅什譯本에 있어서의 2.3의 문제: 보조사상5.6 합집,1992.4.

<개요; 구마라집이 번역한 한역 금강경이 지닌다고 생각하는 몇 가지 문제에 대해 산스크리트본 금강경과 티베트어 역 금강경을 동원해 대조해 봄으로써 설득력 있는 해명을 주려고 한 논문이다. 구마라집과 같은 탁월한 역경가에게도 이해할 수 없는 오역이 가끔 나오는 듯하여 꽤 놀라움을 느끼게 하는 글이다. 이 논문은 저서 중 “원시불교 원전의 이해”에 포함된다.>

 

11) 俱舍論에 대한 원시불교적 비평의 서설: 한국불교학 17집,1992.11.

<개요; 본격적으로 산스크리트본 구사론에 대해 연구하면서 구사론의 논술 전체가 지니고 있는 목적과 방향과 최상위의 교설등이, 우리가 팔리 니카야를 대하면서 자연히 느끼게 되는 그것들과 어떤 친연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보여 준 논문이다. 그리하여 니카야가 12연기설을 최상의 교설로 가르치는데 비해 구사론은 사제설을 최상의 교설로 보는 점 등을 지적하고 있다. 이 논문은 저서 중 “부파불교 원전의 이해”에 포함된다.>

 

12) 巴利藏經 번역론: 가산 이지관 스님 화갑 논총, 1992. 11.

<개요; 불교 원전의 번역에 즈음하여 그 번역학을 정립해 보려는 최초의 시도로 쓴 논문이다. 우선 팔리어 원전의 번역을 위한 이론을 추구하고 있거니와 그러한 작업을 위하여 티베트어 경문과 산스크리트 경문도 함께 동원하여 비교 검토하고 있다. 이 논문은 저서 중 “원시불교 원전의 이해”에 포함된다.>

 

13) 불교 술어 한글옮김의 이론과 실제
: 경전읽기모임 논문집(팔리대장경 우리말 옮김 논문모음집Ⅱ), 1993. 3.

<개요; 원전 번역의 첫 단계는 술어 번역으로 보인다. 술어 번역을 위해서는 원전언어들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아울러 그 술어들이 쓰이는 경설 배경도 중요하다. 그리하여 산스크리트문 화엄 십지경과 팔리 니카야에서 십업과 사선에 관한 경문을 인용하여 철저히 연구하고 있다. 이를 통해 수행에 관련된 몇 개의 술어에 대하여 우리말 번역을 시도하고 있다. 이 논문은 저서 중 “원시불교 원전의 이해”에 포함된다.>

 

14) 空界(ākāśa-dhātu)에 대한 일고찰: 한국불교학 18집, 1993. 11.

<개요; 아비달마 논서들을 보면 공계를 물질로 이해하려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거니와 이것은 공계를 비물질적으로 이해하는 일반적인 관점과 아주 다른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산스크리트본 구사론의 논술과 산스크리트본 대법등론의 논술을 중심으로 살피면서 공계의 중간자적 성격을 밝히고 있는 논문이다. 팔리어 청정도론과 같은 남방 상좌부의 견해도 함께 살핀다. 이 논문은 저서 중 “부파불교 원전의 이해”에 포함된다.>

 

15) 淸淨道論에 나타난 心・心所 相應論에 대하여
: 불교연구(한국불교연구원 논문집) 10집, 1994. 3.

<개요; 남방상좌부의 논서에도 심심소 상응론이 설해져 있으나 이는 북방 유부의 그것과 같은 강도가 아니다. 그러한 두 부파간의 상응에 대한 미묘한 차이를 팔리어 청정도론을 중심으로 하여 산스크리트본 구사론 등과 비교한 논문이다. 그리하여 북방 유부가 심심소 상응론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는데 비해 남방 상좌부는 비교적 미온적임을 주장할 수 있었다. 이 논문은 저서 중 “부파불교 원전의 이해”에 포함된다.>

 

16) 淸淨道論 연구의 발단: 가산학보 3집, 1994. 6.

<개요; 청정도론에 대한 일종의 비평적 해제라고 할 수 있는 논문이다. 청정도론은 불교를 계율과 삼매와 지혜의 범주로 나누어 논술한다. 이 논문은 그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고 나아가 그 내용이 지니는 의미를 팔리 니카야의 입장에 서서 비평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리하여 몇 몇 주요한 내용에 있어 니카야의 경설과 다소 이질적으로 변형되어 있는 것도 몇 개 보고하고 있다. 이 논문은 저서 중 “부파불교 원전의 이해”에 포함된다.>

 

17) 바라문교의 修定과 원시불교 禪定의 차이점에 대하여: 한국불교학 20집, 1995. 11.

<개요; 인도 고대의 Brahmanism에서의 Yoga 수행을 후대의 Yogasūtra의 내용을 통하여 재구성한 뒤 그것을 팔리 니카야에 나타나는 Dhyāna 수행과의 관계 아래 비교함으로써 구체적인 차이점을 밝혀 보려 한 논문이다. 이 논문의 핵심은 Brahmanism에서의 Yoga 수행이 지적인 정신만의 정화에 초점을 둔데 비해, 팔리 니카야에 나타나는 Dhyāna 수행은 정신과 육체의 동시적 정화에 초점을 두는 데에 차이가 있음을 밝힌 것이다.>

 

18) 원시불교 교육의 방법론적 이념으로서의 점교성에 대한 연구:한국종교교육학 1집, 1995. 11.
(「A Study of the Gradual Method of Teaching in Early Buddhism」전체 영문 게제)

<개요; 팔리 니카야를 통해 원시불교의 교육학적 방법론이 ‘점진적으로 가르치는데 있음’을 논술한 글이다. 이 논문은 종교 사상의 범주와 종교 실천의 영역과 종교 체험의 경지에 있어서도 점진적인 성격이 지켜지는가를 살핀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통해 고타마 붓다는 점진적인 교육을 실천함으로써 제자들로 하여금 완성된 지식에 이르게 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이 논문은 저서 중 “불교란 무엇인가”의 초판(1997)에 포함되었으나, 지금의 “불교란 무엇인가”에서는 빠진다.>

 

19) 부파불교의 사념처설 연구; 불교학보(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제32집, 1995. 12.

<개요; 사념처라는 수행법이 부파불교 시대에 각별히 각광을 받고 있기에 그것에 대해 아비달마교학의 역사적 흐름에 입각해 살펴 본 논문이다. 팔리 남방상좌부의 견해를 원전 번역의 차원에서 일단 고스란히 전달하고 이와 더불어 설일체유부의 그것과 사리불아비담론의 견해도 상호 비교하면서 논술하고 있다. 이 논문은 저서 중 “부파불교 원전의 이해”에 포함된다.>

 

20) 원시불교의 사념처 수행에 대하여
; 청호불교논집(재단법인 청호불교문화원) 제1집, 1996. 2.

<개요; 팔리 니카야에 나타나는 사념처에 관련된 교설 및 념(念)에 관련된 교설을 면밀히 검토하여, 붓다가 사념처를 설함에 있어 속제적인 입장과 제일의제적인 입장의 두가지 입장에 서 있음을 밝혔다. 그리하여 어떤 입장인가에 따라서 身→受→心→法의 구체적인 내용이 미묘하게 바뀌는 것을 살폈고 그런 과정을 통해 사념처 수행이 불교 수행의 모태가 됨을 주장하였다. 이 논문은 저서 중 “아함경 여설”에 포함된다.>

 

21) 『청정도론』 心經路說의 주석적 번역; 가산학보 제 5 집 1996.7.15

<개요; 팔리어 청정도론의 識蘊 논술에 나오는 14단계의 심경로설에 대해 주석하면서 번역한 글이다. 結生→有分→換起→봄・들음・냄새맡음・맛봄・만짐→受取→推算→確定→速行→彼所緣→死의 경로로 마음이 전개된다는 남방상좌부의 견해에 대한 청정도론의 결정적 논술을 주석 번역한 것이다. 이 논문은 저서 중 “부파불교 원전의 이해”에 포함된다.>

 

22) 불교철학의 해체와 재건; 현대사회와 철학의 정체성(철학연구회96주년 추계 발표회), 1996.12.

<개요; 현대 철학에서 사용하는 형이상학의 극복 또는 철학의 종언으로서의 해체가 아니라 일반적 의미의 止揚을 해체의 뜻으로 사용하여 불교 사상 전반을 조망해 본 논문이다. 그리고 팔리 니카야와 산스크리트본 소품반야경 산스크리트본 반야심경 및 산스크리트본 법화경과 산스크리트본 십지경을 주요 자료로 삼아 논술하였다. 그리하여 원시불교에서 해체의 대상으로 등장하는 것은 기존의 인도 사상이고 초기 대승 경전 중 반야부 경전에서 해체의 대상으로 등장하는 것은 원시불교의 열반이라고 논술한다. 나아가 법화부 경전에서는 반야부 경전의 반야바라밀다를 중심으로 하는 보살승이 해체의 대상으로 보인다. 이러한 것이 화엄부의 십지경에 들어 와서는 모두가 한 줄기 깨달음의 길로 재건되고 있음을 논술한 글이다.>

 

23) 『대품반야경』에 나타난 원시불교의 수행도; 불교학보(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제 33집, 1997.2.

<개요; 반야부로 시작하는 대승불교가 결국 원시불교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되어야 함을 修行이라는 주제에 입각해 논증하고 있는 글이다. 우리는 이글에서 원시불교 수행도가 반야부 경전 속에 놀랍게도 정연하게 들어 와 있음을 보게 됨으로써 둘 사이의 불가분리성을 확인하게 된다.>

 

24) 불교철학의 궁극적 관심; 미천 목정배 교수 화갑 논총, 1997.3.

<개요; 불교 철학이란 인간이 지닌 궁극적 물음에 대해 분명히 해명하는데 관심을 두고 있으며 그 해명을 교육을 통한 깨달음에 의하여 성취하고 있음을 논하였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수행자의 인식 구조의 변혁으로 적극적으로 표현되며 그러한 눈에 의하여 인식되는 대상 세계의 모습도 명확히 제시하고 있음을 논하였다. 그리하여 불교철학의 궁극적 관심을 전 중생의 성불과 불국토 건설로 명언하고 있는 글이다.>

 

25) 청정도론 색온론에 대한 주석적 번역; 가산학보 제6집, 1997.7.

<개요; 청정도론 연구의 일환으로 心法에 대한 전번호(가산학보 제5집)의 연구를 이어 이번호에는 色法에 대한 청정도론의 논술을 주석한 것이다. 남방상좌부의 색법관은 먼저 극미를 인정하지 않고 사대로만 이해하는데 특징이 있다. 그리고 소조색에 24종이 언급되는 등 특유의 색법관을 펼친다. 이 논문은 저서 중 “부파불교 원전의 이해”에 포함된다.>

 

26) 원시불교 열반의 사상적 의미; 불교학보 제 35집, 1998. 12.

<개요; 이 글의 주제는 붓다의 일생 중에 벌어지는 역사적인 사건으로서의 열반을 다루는 것이 아니다. 교리적이고 사상적인 경지로서 경전에 제시되고 있는 열반이라는 法에 대해서 다루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한 사상적인 규정을 내리려 할 때 열반은 우선 초기불교에서는 최상의 위상을 지닌 것으로 평가되기에 그것부터 살필 것이다. 이어 열반의 모습을 심리적인 측면과 구조적인 측면으로 나누어 고찰할 필요가 있어 그러한 작업을 진행할 것이다. 그런 뒤 초기불전 중에서도 그 성립이 이르다고 여겨지는 소니카야의 自說經에 설해지는 열반에 대한 풍부한 표현을 서술적으로 음미하는 시간도 가지려고 한다. 나아가 대승불교의 열반경에 나타난 사상들을 음미하면서 열반에 대한 적극적인 의미와 나아가 초기불교와 대승불교의 연장선에서의 열반에 대한 일치된 입장을 음미할 것이다. 이를 통해 진정한 이고득락의 가르침으로서 열반에 대한 교의를 공감하고자 한다. 이 논문은 저서 중 “아함경 여설”(재판)에 포함된다.>

 

27) 색온에서의 색의 의미; 불교학보 제 36집, 1999. 12.

<개요; 25번 논문 청정도론 색온론에 대한 주석적 번역을 더욱 발전시켜 구사론 등의 색온론과 비교함으로서 불교교리의 가장 기본적 개념의 위상을 지니는 색(色, rūpa)에 대한 부파불교적 편차에 대한 연구를 마무리 지은 논문이다. 모름지기 불교 술어들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잘 보여주는 논문으로서 불교학의 바른 성취를 위해서 일독해야 할 내용을 담고 있다.>

 

28) 원시불교 수행법의 미래지향적 가치; 미래학불교학 창간호, 2004. 5.

<개요; 이글의 목적은 먼저 불교는 유물론과 관련하여 어떤 입장에 있는가 하는 것을 규정하는데 두게 된다. 그리하여 현대의 유물론적 경향을 생명의 기원과 마음의 성격 규명에 대한 학자들의 입장을 통해 소개하고, 이어 불교 교리 속에서 유물론적인 해석의 가능성을 지닌 듯이 보이는 표현들을 자세히 소개할 것이다. 그런 뒤 불교의 입장을 결코 유물론적으로 보아서는 아니 된다는 해석을 내리게 하는 표현들을 역시 자세히 소개할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불교는 유물론과 관련해 어떤 입장에 있는가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 불교적 문제의식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글의 두 번째 목적은 앞서 제기된 문제에 대한 적극적 해답이 어떻게 내려질 수 있을까를 연구하고 그 답으로 수행법을 제시하게 된다. 따라서 이 글은 불교수행법이 무엇인가를 밝히는 것보다, 불교의 수행법이 유물론과 관련해서 제기되는 문제에 대해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를 밝히는데 초점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유물론과 관련된 문제 제기는 진리성 주장의 문제 제기이며 참과 거짓을 밝히고자하는 문제 제기이다. 수행이란 본래 참과 거짓을 분명히 밝히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라고 필자는 이해하고 있다. 물론 그것이 수행의 전부가 아닌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그것이 수행의 시작임도 또한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본다.>

 

29) 다종교시대와 원시불교 수행법의 보편성; 미래학불교학 제2호, 2005. 6.

<개요; 붓다는 아예 대립되는 두 견해가 있을 때는, 슬기로운 종교인이라면 그 어느 견해에도 달라붙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왜냐면 한 견해에 들러붙으면 다른 견해와 시비다툼(viggaha)이 있고, 논쟁이 있고, 반대(vighāta)가 있고, 해로움(vihesā)이 차례로 있게 된다고 이미 통찰했기 때문이다. [맛지마 니카야, 제 2 권, 제 24 경 긴 손톱 경]. 그런데 자기 종교의 진리성을 주장하지 않는다면 적극적인 의미의 종교인의 삶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렇다면 다른 종교를 적대시하지 않으면서도 자기 종교의 진리를 적극적으로 주장할 수 있는 방법이 나오는 것은 가능할까? 만일 그런 방법만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은 다종교 시대가 지니고 있는 여러 가지 병적인 현황과 예후에 대해 의미 있는 한 가지 처방이 될 것이다. 이글은 붓다의 가르침 중에서 그런 처방이 될만한 말씀을 발견한 듯하기에 한번 자세히 소개하고 평가해보고 있다.>

 

30) 極樂莊嚴經의 五種莊嚴과 穢土의 淨土化; 정토학회, 2010 10.(정토학 연구 13집)

<개요; 이글은 심각한 불교 교리를 다룬 것이 아니다 보니 정토교학의 중후한 분위기를 지니지는 않는다. 아무래도 조금은 막연한 정토문화라는 주제를 다루다 보니 다소 박진감이 떨어지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극락장엄경"에 설해진 다섯 장엄을 하나씩 살피면서 “예토의 정토화”를 위한 설계도면을 한 장씩 펼쳐 보는 것이 전혀 의미 없지는 않다. 부처님의 말씀은 그 전체가 무한한 가치를 지닌 보배일 뿐 아니라 어느 한 경전도 귀하지 않은 말씀이 없다. 마치 금은 쪼개어져도 금의 빛을 잃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럴 때 대표적인 정토부 경전인 "극락장엄경"은 그 자체로 미래 한국 사회를 위한 더할 수 없는 제안을 담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경전을 소의경전으로 하는 정토 문화를 창달함으로써, 한국 사회의 미래를 보다 밝게 열어 갈 수 있는 틈새를 보게 하는 것이 이 글의 의미이다.>

 

31) 법화경 성립에 관한 일고찰; 태허조사 학술세미나 2010. 11.

<개요; 이글은 심각한 불교 교리를 다룬 것이 아니다 보니 정토교학의 중후한 분위기를 지니지는 않는다. 아무래도 조금은 막연한 정토문화라는 주제를 다루다 보니 다소 박진감이 떨어지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극락장엄경”에 설해진 다섯 장엄을 하나씩 살피면서 “예토의 정토화”를 위한 설계도면을 한 장씩 펼쳐 보는 것이 전혀 의미 없지는 않다. 부처님의 말씀은 그 전체가 무한한 가치를 지닌 보배일 뿐 아니라 어느 한 경전도 귀하지 않은 말씀이 없다. 마치 금은 쪼개어져도 금의 빛을 잃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럴 때 대표적인 정토부 경전인 “극락장엄경”은 그 자체로 미래 한국 사회를 위한 더할 수 없는 제안을 담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경전을 소의경전으로 하는 정토 문화를 창달함으로써, 한국 사회의 미래를 보다 밝게 열어 갈 수 있는 틈새를 보게 하는 것이 이 글의 의미이다.>

 

32) 대승불교 서원(誓願, praṇidhāna) 의식의 초기 불교적 모습에 대한 일고찰
; 정토학회 2011. 12.(정토학연구 16집)

<개요; 일반적으로 초기불교와 서원 의식을 쉬 연결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부파불교나 소승불교를 초기불교와 혼동하는데서 벌어진 현상 아닌가 할 정도로, 초기불교 그 자체로 보면, 주목할 만큼의 강렬한 서원 의식의 존재를 부인해서는 아니 되리라고 생각한다. ‘성구’라는 의식이 우리 부처님의 육년 보살행을 이끌었던 것임을 파사라시 숫타 곧 성구경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었거니와, 그것이 이미 서원 의식의 존재를 알려주고 있었다. 이어 ‘결의’라는 덕목이 ‘바라밀다’와 결합하여 나타난다는 사실은 초기불교의 서원 의식이 초보적이거나 원시적인 것이 아니라, 완성된 모습으로 정착해 있었다고 주장하게 하는 것이다. 사실 대승불교는 ‘전 중생의 성불’과 ‘불국토 건설’을 목적으로 하고 초기불교는 ‘자신의 열반 증득’을 목적으로 한다고 간단히 정돈해 버리는 경향이 사람들에게 있는 듯하다. 그리하여 초기불교에는 이웃을 고귀한 목적의식에 동참시키려는 생각이 존재하지 않는 한 서원 의식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기고 말 수도 있다. 그래서 초기불교와 서원 의식의 연결을 꺼릴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살핀 마하파리닙바나 숫타의 기사는 불자들이 남녀 출가재가를 가리지 않고 모두 부처님의 “법을 받아 지녀 남을 위해 설하고, 가르치고, 시설하고, 세우고, 연설하고, 분석하고, 설명해 줘야 할 것이며” 그를 바탕으로 “부처님의 범행법을 많은 사람이 지니고 천신과 인간에까지 잘 전달되어야 한다.”고 했으니, 불자들은 단순히 자신의 해탈 열반은 물론 이웃의 해탈 열반까지 서원해야 한다는 뜻이 성립하고 만다. 그렇다면 초기불교의 목적의식 속에 대승불교의 서원만큼은 아니더라도 거기에 버금가는 크기의 목적의식이 존재하고 그것은 충분히 고귀한 목적의식이라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아울러 이웃들에게도 그 고귀한 목적의식에 동참하기를 바란다면 대승불교의 서원 의식만큼은 아니라 하더라도, 결코 과소평가하거나 소홀히 해서는 아니 되는 서원의식이 초기불교에 존재함을 주장하는 것은 온당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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