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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25 23:30
10. 차팔라 사당
최후의 안거 장소인 웰루카마카에서 차팔라 사당(Cāpāla-cetiya)까지는 다시 북쪽으로 14km 정도 올라간다. 차팔라 사당은 부처님이 “목숨의 결합작용(āyu-saṅkhāra)”을 끊으시는 중요한 장소이다. 바로 열반에 들기 3개월 전의 사건이 있었던 곳이다. 목숨의 결합작용을 끊는 것은 성자의 열반이 실질적으로 시작한다는 의미이거니와, 그러기에 대지의 진동이 동반되었던 것이다. 부처님 일대기를 통해 대지가 진동한 것은 모두 여섯 번이었다.
아래 사진은 차팔라 사당의 주위 전경이다.
다음은 차팔라 사당 지점의 바로 앞 서쪽을 흐르는 개천 사진이다.
다음은 차팔라 사당으로 들어오는 길로 우측으로 차팔라의 철도 역사가 공사 중이었다.
차팔라 사당 관련 사진을 특별히 세 장이나 올린 것은 이 지역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탁태(托胎)의 가필라와스투, 탄생의 룸비니, 깨달음의 보드가야, 전법륜의 바라나시, 열반의 쿠시나가라와 더불어 부처님 일대기에서 가장 중요한 6곳 중 하나로 부처님에 의해 정해진 장소이다. 이런 장소가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결코 이 지점은 방치되어서는 아니 되니, 기금을 모아서라도 기념의 장소를 건립하고 싶었다.
11. 마하와나의 쿠타가라살라
마하와나의 쿠타가라살라(Mahāvanaṃ Kūṭāgārasālā, 뾰족지붕 회당)는 차팔라 사당에서 북북서쪽으로 5km 올라간 곳에 위치한다. 그리고 그곳은 와이샬리의 부처님 사리탑 유적지 바로 아래에 위치한다. 이곳에서 부처님은 와이샬리에 의지해 머무는 모든 제자들을 소집하신 뒤, 정법을 오래 머물게 하고 사람들의 행복과 안락을 위하고, 세상을 동정하는 법을 설하시니, 바로 37조도법이었다. 그리고 공식적으로 대중들에게 3개월 뒤에 열반하실 것임을 선언하신다. 그리고 게송을 읊으셨다.
“…비구들아, 방일하지 말고 정념을 갖추고 계율을 잘 지켜라/ 삼매에 잘 들고 사유를 잘하고, 그 마음을 잘 보호하도록 하라/ 이 교법과 계율에서 방일하지 않고 지낸다면/ 그는 재생과 윤회를 버리고 괴로움을 끝낼 것이다//”
아래 사진은 거점 지역인 바완 포카라에서 바라본 쿠타가라살라이다. 도로 사정 상 그 위치에 닿을 수 없었는데, 사진으로 보면 가운데 얕은 숲 넘어 지점이다.
12. 반다가마
반다가마(Bhandagāma)는 쿠타가라살라에서 북북서쪽으로 24km 정도 올라가는 곳에 위치한다. 부처님은 와이샬리를 떠나시면서 여래가 와이샬리를 보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하시며 코끼리가 보듯이 온몸을 돌려 그 도시를 다시 한 번 보셨다. 그리고 반다가마라는 마을로 가자고 하셨다. 그곳에서 부처님은 계 정 혜 해탈의 사무루법을 두 가지 형식을 사용하여 거듭 강조하는 설법을 베푸신다. 그만큼 부처님 일대의 교의 중에 사무루법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짐작케 한다.
아래 사진의 연못 건너편이 반다 가마이다.
13. 핫티가마카, 암바가마, 잠부가마
반다가마 이후 핫티가마카(Hatthigāmaka, 象村; 반다가마에서 북북서쪽으로 약 46km 지점) 마을과 암바가마(Ambagāma, 菴婆羅村; 핫티가마카에서 서쪽 도로로 약 26km 지점) 마을과 잠부가마(Jambugāma, 閻浮村; 암바가마에서 서서북쪽으로 약 18km 지점) 마을은 부처님의 최후 여정에서 경유한 것으로 <<대반열반경>>에 나오지만 베풀어진 법문이 경전에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여기에 같이 묶어서 소개한다.
다음은 핫티가마카 광장의 보리수이다.
다음 사진의 가운데 얕게 도드라진 사탕 수수 밭이 암바가마의 위치이다.
다음 사진의 공터 끝 부분이 잠부가마의 위치이다.
14. 보가나가라의 아난다 사당
잠부가마에서 보가나가라(Bhoganagara; 善伽城)의 아난다 사당(Ānanda [Sānandara (ka.)] cetiya)까지는 북북서쪽으로 약 22km 지점이다. 이 사당에서 부처님은 정법을 판단하는 네 가지 큰 근거에 대해서 설하신다. 누가 부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면, 경전에 설파되어 있는지, 율전에 교시되어 있는지를 반드시 살피라는 취지의 가르침이다. 불자의 모든 판단의 출발점은 반드시 경전의 기록이어야 한다는 중량감 있는 교훈이 베풀어 진 것이다. 아울러 많은 가르침을 베푸시고는 역시 마무리는 계 정 혜 해탈의 사무루법으로 장엄하신다.
보가나가라의 아난다 사당은 자료의 미비로 인해 직접 그 지역을 확인하지 못했다. 그래서 주변 지역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아래 사진은 보가나가라를 떠나면서 지나간 27(57)번 도로의 동쪽 편 벌판인데, 저 벌판으로 1km 정도 들어가 있는 마을 초입에 아난다 사당이 위치한 것으로 보인다.
15. 파와
드디어 마지막 공양을 드시는 파와(Pāvā)에 이르렀다. 파와는 보가나가라의 아난다 사당에서 북북서 쪽으로 약 28km 지점이다. 이곳에서 부처님은 춘다의 마지막 공양인 수카라맛다와(sūkaramaddava) 요리를 드신다. 팔리어로 된 <<대반열반경>>에는 자세한 이야기가 없으나, 한역 <<반니원경>>에는 네 종류의 사문에 대한 가르침이 베풀어지고 있다. 그 뒤 부처님은 격렬한 병환을 겪으시니 피를 배변하는 등 죽음에 임박한 신랄한 느낌을 겪으신다. 그러나 부처님은 번민하지 않은 마음으로 참으시고는 쿠시나라로 가자고 하신다.
아래 사진은 춘다의 거처로 여겨지는 곳에 세워진 사리탑 유적이다.
차팔라 사당에서는 아난다 존자의 충심(忠心)이 그리고 파와에서는 춘다 거사의 충심이 느껴져 마음이 아련했다. 부처님의 열반을 두고 세속의 우자(愚者)들은 자칫 부처님의 위대성을 곡해할 수 있었다. '금강불괴신이라고 일컬어지고, 불사의 법을 증득하셨다면서도 결국 죽음을 면치 못하지 않았았느냐?'고. '최소한 그런 위대한 성인이 보통 사람처럼 80에 세상을 떠나는 것은 너무 평범하지 않냐?'고. 이런 류의 비난에 대해 아난다 존자는 자신이 부처님께 수명의 연장을 요청하지 않았기에 벌어진 일이라고 변호하니, 그것이 차팔라 사당에서의 사건이기도 하다. 아울러 춘다 거사는 자신이 여래께 맞지 않은 요리를 올린 것이 화근이 되었으니, 시주자를 아끼신 부처님이 맞지 않음에도 그 공양을 드시는 바람에 일찍이도 세상을 떠나셔야 했다는 취지의 변호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스승의 위대함에 조금이라도 흠결이 생기는 것을 바라지 않았던 당시 불제자들의 충심에 오늘 나의 자세를 되돌아 보았다.
2017.10.27 07:45
2017.11.02 10:19
스승님께서 순례하신 여러 마을들 사진을 보면서 답답했던 마음이 툭 터져 시원합니다.
“… 비구들아, 방일하지 말고 정념을 갖추고 계율을 잘 지켜라/ 삼매에 잘 들고 사유를 잘 하고, 그 마음을 잘 보호하도록 하라/
이 교법과 계율에서 방일하지 않고 지낸다면/ 그는 재생과 윤회를 버리고 괴로움을 끝낼 것이다//”
이 말씀을 항상 명심하고 실천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보승)
2017.11.12 18:53
무더운 날씨에 고생이 많으셨을것 같습니다. 순례지 마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경전을 이용하여 말씀해 주시니
부처님 당시 현장의 일들을 직접 느끼는 것 같습니다. 경전을 통한 가르침과 현장 학습을 통한 생동감있는 가르침을
함께 주시는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2017.11.17 16:15
스승님 ! 감사합니다.
참 좋은세상 !
우리집 방안에서 인도에 있는 부처님 성지를 다 볼수 있으니
여기도 불국토요 극락세계가 따로 없습니다.
나무 아미타불 .
2017.11.30 17:35
_()_감사합니다_()_
_()_나무석가모니불_()_나무석가모니불_()_나무시아본사석가모니불_()_
2017.12.30 21:27
스승님 감사합니다
다시한번 부처님을 생각해봅니다
관세음보살()
이렇게 좋은 사진과 소상한 설명까지 올려주시는 스승님의 은혜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
나무 서가모니불 나무 서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서가모니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