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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3 18:22
영상강의
음성강의
2018.05.23 19:40
2018.06.21 15:49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참으로 묘한 법문을 들었습니다.
스승님, 고맙습니다.
팔리 증지부제1법부에 부처님의 나타남은 크나큰 눈(mahato cakkhussa pãtubhãvo hoti)이다.
눈은 가장 선제적으로 아는 기능을 갖고 있다.
수행자가 어떤 경지에 도달했을 때 요요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부처님은 무소유처 비비상처도 진정한 최상의 경지가 아니라는 걸
미리 알고 떠나 진정한 열반을 성취하셨다.
수행의 경지와 현실은 이격이 없어야 한다. 그게 現法涅槃이다.
저는 길없는길을 읽으면서 ‘주인공이 경지에 도달했는데도 왜 저렇게 행동할까(요요현상)’ 궁금해 했는데,
이제 그 의문이 풀렸습니다.
고맙습니다. 보승합장
2019.04.18 21:39
*눈이 아는 지혜 : 반야(선제적인 앎의 출현임)
*수행에서도 <요요현상>이 있다. 마치 다이어트하던 사람이 다이어트 노력을 게을리 하면 다시 살이 찌는 현상과 같다.
*(그렇게 모든 )느낌이 (완전히)소멸하면 (비로소)모든 괴로움의 멸진이 있게 된다.
중요한 법문을 듣게 되어서 고맙습니다.
나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2020.08.15 01:35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현법열반의 길을 가라는 말씀 깊이 새기겠습니다.
A. 자이나 7제설에 대한 <<데와다하경>> 7단 구성의 두 가지 해석
1. 일반적 해석은 다음과 같다.
*1 어떤 사람이든지 그들이 느끼는 바 즐거움 또는 괴로움 또는 즐거움도 괴로움도 아닌 느낌들은 모두가 전생에 지은 업을 원인으로 한다. yaṃ kiñcāyaṃ purisapuggalo paṭisaṃvedeti sukhaṃ vā dukkhaṃ vā adukkhamasukhaṃ vā, sabbaṃ taṃ pubbekatahetu.[1. 活命 jīva, 2. 非命 ajīva, 3. 漏入 āsrava, 4. 繫縛 bandha]
*2 그런데 고행이 있다. 고행을 실천하면 그러한 과거의 업(=이미 활명에 새어들어 있던 과거 생의 업 물질)이 끝난다. Iti purāṇānaṃ kammānaṃ tapasā byantībhāvā.[6. 滅絶 nirjara]
*3 그리고 새로운 업을 짓지 않으면 navānaṃ kammānaṃ akaraṇā 미래에 새어드는 번뇌가 없어진다. āyatiṃ anavassavo.[5.遮斷 saṃvara]
*4 미래에 새어드는 번뇌 (마저) 없으면 업이 (완전히) 소멸한다. āyatiṃ anavassavā kammakkhayo.
*5 업이 (완전히) 소멸하면 (먼저) 괴로움(의 느낌)이 소멸한다. kammakkhayā dukkhakkhayo.
*6 괴로움(의 느낌)이 소멸하면 (나머지 즐거움 또는 즐겁지도 과롭지도 않은) 느낌(마저 완전히) 소멸한다. dukkhakkhayā vedanākkhayo.
*7 (그렇게 모든) 느낌이 (완전히) 소멸하면 (비로소) 모든 괴로움의 멸진이 있게 된다. vedanākkhayā sabbaṃ dukkhaṃ nijjiṇṇaṃ bhavissati [7.解脫 mokṣha]
2. 본 강의에서는 자이나 7제설에 대한 <<데와다하경>> 7단 구성의 해석을 다음과 같이 진행했다.
*1 어떤 사람이든지 그들이 느끼는 바 즐거움 또는 괴로움 또는 즐거움도 괴로움도 아닌 느낌들은 모두가 전생에 지은 업을 원인으로 한다. [活命 非明 漏入 繫縛]
*2 그런데 고행이 있다. 고행을 실천하면 그러한 과거의 업(=전생에 지은 업)이 끝난다.(그러면 그 자리가 해탈이다.)[遮斷 滅絶 解脫]
*3 [차단 멸절 해탈의 후 3제를 확충하다.] 곧 새로운 업을 짓지 않으면 navānaṃ kammānaṃ akaraṇā 미래에 새어드는 번뇌가 없어진다.[遮斷]
*4 미래에 새어드는 번뇌가 없으면 (그 다음에는 기존에 흘러들었던) 업 (물질)이 소멸한다. āyatiṃ anavassavā kammakkhayo.[滅絶]
*5 업이 소멸하면 괴로움이 소멸한다. kammakkhayā dukkhakkhayo.[解脫]
*6 [이미 괴로움이 소멸했는데 다시 괴로움의 소멸을 언급해야 하는 이유는 무얼까?] 괴로움이 소멸하면 느낌이 소멸한다. dukkhakkhayā vedanākkhayo. [?]
*7 느낌이 소멸하면 모든 괴로움의 멸진이 있게 된다. vedanākkhayā sabbaṃ dukkhaṃ nijjiṇṇaṃ bhavissatī[?]
B. 열반이 못되는 색계사선과 현법이 못되는 무소유처 등에 대하여
1. 색계사선의 현법락주
* 팔리문 <<자환희경(Sampasādanīyasuttaṃ)>>에는 부처님은 쾌락과 고행을 멀리한 채, 현법락주(現法樂住)의 사선(四禪)을 쉽게 얻으신다고 설해져 있다. (Na ca, bhante, bhagavā kāmesu kāmasukhallikānuyogamanuyutto hīnaṃ gammaṃ pothujjanikaṃ anariyaṃ anatthasaṃhitaṃ, na ca attakilamathānuyogamanuyutto dukkhaṃ anariyaṃ anatthasaṃhitaṃ. Catunnañca bhagavā jhānānaṃ ābhicetasikānaṃ diṭṭhadhammasukhavihārānaṃ nikāmalābhī akicchalābhī akasiralābhī. )
* 이 경설을 통해 색계사선이 현법락주(現法樂住)로 표현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색계4선이 현법락주라 하면서 현법(現法)이라는 전제를 얻은 것은, 바로 육근(六根) 육경(六境)을 전제로 하는 육육법(六六法)에 속한 수행체계이기 때문이다.
* 곧 육근과 육경의 십이처는 바로 우리의 현실을 분류 포섭하는 대표적인 가르침이다.
* 아울러 락주(樂住)라는 표현을 얻은 것은 그것이 고행의 괴로움이 아님은 물론이요, 세속적 쾌락의 즐거움보다도 훨씬 깊은 즐거움을 누리는 경지이기 때문이다.
* 하지만 현법 열반일 수 없는 것은 그 즐거움이 결코 영속(永續)적이지 않고 단속(斷續)적이기 때문이다.
* 열반의 즐거움은 영속적인 즐거움이다!
2. 무소유처와 비상비비상처의 비현법성(非現法性)
* 이에 비해 무소유처(無所有處)는 숙명(宿命)의 명(明)을 불러들이는 삼매이고,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는 천안(天眼)의 명(明)을 불러들이는 삼매로서 둘 다 명(明)의 원인이다.
* 명은 바로 열반에 대한 지적(知的)인 명칭이다. 왜냐면 이 지점에서 비로소 영원한 것과의 만남이 선언되기 때문이다.
* 그래서 이 삼매의 경지는 열반이라고 할 만한 면이 분명 있다. 다시 말해 영원성의 구현이기 때문이다.
* 하지만 본 강의에서도 언급했듯이, 무소유처나 비상비비상처는 그 자체로 현실의 법이 아닌 특별한 위치 속의 삼매이다.
* 특별한 위치임을 잠시 설명하자면, 먼저 현실적으로 인지 하기 어려운 사대(四大)를 전제로 오온(五蘊)이 성립한다.
* 이러한 오온에 속한 수행의 경지가 공무변처와 식무변처이거니와, 그것마저 초월한 수행의 경지가 무소유처이며, 비상비비상처인 것이다.
* 따라서 무소유처와 비상비비상처는 현실과는 거리가 너무도 먼 참으로 미세한 구조 속의 삼매이기에, 비록 영원성의 구현으로서의 열반의 기미를 잡았거나 잡는 것이 확실하다 하더라도, 그것에는 결코 현법이라는 중요한 진리의 조건을 부여할 수 없는 것이다. 곧 반드시 그 삼매 속에서만 얻어지는 열반에 대한 기미이다.
* 그러기에 열반을 느끼려면 무소유처 등에 들어가야만 하고, 만일 그 상태에서 벗어난 현실로 돌아오면 여지없이 번잡한 고뇌에 휩싸이고, 그러면 다시 들어가야 하고, 거기서 벗어나면 다시 고뇌에 휩싸이고, 그러면 다시 들어가야 하는 이른 바 수행자의 요요 현상을 겪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