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한국어

자유게시판

인터넷 불교 대학 마하나와 아슈람 열 숟가락 운동
자유 게시판

	강좌교재안내              
	학부강좌 및 대학원 강좌 교재를 출시하였습니다. 
	학습효과에 도움이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자세한사항은  이곳을 클릭하세요.
	**마하나와 아슈람은 판매대행만을 하고있습니다.

 존경하는 도반님.올 한 해 모두들 건안하시고 강녕하십시오,

저의 졸작 수필 1편 올립니다. 백담거사 장 경진합장


      포기와 도전 /장 경진


  키가 유난히 작은 나는, 그런 콤플렉스 때문인지 운동과 담을 쌓고 지내왔다.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도 운동, 그 중에서도 축구하고는 아무 인연이 없는 것이려니 생각하고 살아왔다. 축구에는 특히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난 지금도 키가 작은 편이지만 초등, 중학교 때는 더욱 작았다. 반에서 키가 작은 순번대로 항상 1번 아니면, 운이 좋을 때라야 2번 되는 것을 9년이나 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오른쪽 무릎이 자주 아픈 허약한 체질이어서, 축구나 운동 같은 것은 할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고 2년 때였다. 방과 후에 홀∙짝수로 나누어서 축구시합을 하였는데, 친구들이 나를 끼워주지 않았다. 나는 한번이라도 그 시합에 꼭 참가하고 싶어서 몇 번이나 친구들에게 부탁했었다.

“친구야. 나 공 한번만 차보게 해 달라.”며 주장에게 통사정을 했다.. 

“안 돼. 너 때문에 우리 팀이 질 게 뻔하단 말이야.”

주장은 두 말 없이 거절이었다. 아무리 친구끼리 하는 친선 게임이라고 해도 승부의 세계는 냉혹했다. 지는 팀이 이긴 팀에게 국수를 사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 ‘국수 값’이 학생 처지로는 만만치 않은 거액이었다. 진 팀 한사람이 이긴 팀 한 사람의 국수 값까지 부담하는 것이었다. 

 ”야 ! 그래도 한번만 차보자. 만약 우리 홀수 팀이 진다면 내가 국수 값 다 낼께.“

  내가 그렇게 제안을 하자 주장의 귀가 솔깃해지는 눈치였다.  

“정말이지? 그렇다면 한번 뛰어봐”

 그렇게 해서 소원이던 축구를 해보게 되었다. 그 경기에선 내가 거의 뛰지를 못하는 바람에, 그날의 결과는 뻔했다. 내가 22명의 국수 값을 다 계산하였다. 어머니에게 공책 값, 연필 값으로 거짓말하며 물어낸 돈이었다. 돈도 돈이지만 축구를 평생 처음해보니, 재미는커녕 너무 힘들고, 입에서는 단내가 나서, 다시는 축구이야기를 입에 담지도 않으리라 결심했다. 

 

 그렇게 운동하고는 담을 쌓고 지내다, 공무원생활을 하면서도 운동이나 축구는, 나하고는 아무 인연이 없는 것이라 여기며 살아왔다. 그러다가 스물 여덟살 때 재무부(지금의 기획재정부)로 전근하였다. 첫 발령처가 총무과 경  리 담당이었다. 재무부라는 곳이 국가 예산이나, 은행 관련 업무를 하는 곳이라, 축구하고는 관련이 없는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직원들의 축구에 대한 열기가 강했다. 

 총무과를 주축으로 한 직속 팀과 각 국별 대항으로, 열 네 개 팀 정도가 축구시합을 1년에 봄가을 두 번씩 벌렸다. 

 축구시합 때는 해당국장들이 서로 다투면서까지 우승에 대한 열망이 대단하였다. 내가 나이가 어린 편이다 보니, 억지로 축구선수로 차출되어 내 평생 두 번째로 축구를 하게 되었다. 옛날 학창시절의 아픈 추억이 있어, 정말 축구를 하기 싫었지만 젊은 나이 탓에 못 뛴다고 할 수도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시합 시작한 지 10분도 되지 않았는데, 뛰기는커녕 걷기조차도 힘들었다. 겨우 전반전을 뛰고는 후보 선수로 빠지고 말았다. 참 창피하기도 하고, ‘에이 못난 놈’이라 혼자 자학을 하며, 얼마나 마음 상했는지...... , ‘내 인생에 축구는 없다’라고 다시 다짐하였다. 


  그렇게 한 1년쯤 지내다가, 이사 간 동네에 조기축구팀이 새로 생기는 것 같았다. 조기축구를 해보면 축구를 잘 할 수도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조기축구 창립멤버로 참가하였다. 그 이름도 내가 우겨서 <화랑 조기 축구 회>라고 거창하게 지었다. 그 당시 축구 국가대표팀의 명칭이 <화랑대표팀>이었다. 

 난 축구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다 보니, 새벽에 나가서는 바깥으로 나오는 공이나 주워주고, 구경만 하였다. 축구는 못해도, 재무부 경리과에 근무하다보니, 경리에 밝다하여 조기축구회 총무를 맡게 되었다. 그렇게 며칠 지내다보니, 나도 어쩌면 축구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기회에 축구를 통하여 체력을 올리고, 작년 축구시합의 창피를 갚아보자는 오기도 생겼다. ‘축구가 내겐 힘들다’는 선입관이 있었던 탓인지, 참 힘든 고비를 많이 넘겼다. 그렇게 변방의 축구를 시작하여, 몇 달이 지나보니 꽤 축구에 재미도 붙게 되고, 패스나 슈팅도 제법 잘 하게 되었다. 거의 3년 가까이, 매일 새벽5시부터 1시간 정도 꾸준히 축구연습을 했다. 일요일은 온종일 딴 팀과 시합도 하다 보니, 재미도 생기고 체력도 꽤 좋아진 것 같았다. 그 해 봄철 축구시합이 다시 열렸다. 나는 직속 팀 축구선수로 다시 뛰었는데, 작년 시합보다는 월등히 잘 뛸 수 있었다. 우리 직속 팀이 준결승전에서 패하여 결승진출이 좌절되어 몹시 아쉬웠다. 그 후로는 축구가 즐거워졌고, 덩달아 테니스도 제법 하게 되었다. 


 결승 진출에 실패한 그 해 가을철 재무부 각 국별 대항 축구시합이 다시 열렸다. 그 시합에서 나는 이재국 축구선수로 경기에 참가하였다. 이재국은 은행을 담당하는 주무 국으로, 재무부 모든 직원들이 1순위로 가고 싶어 하는 부서였고, 나도 상당히 원했던 부서였다. 봄철 축구시합에서, 내 축구솜씨를 보고는, 이재국장이 전입을 승낙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다. 나의 축  구 포지션은 링커로 공격과 수비를 모두 담당하는 가장 많이 뛰는 힘든 포지션이었다. 영국의 맨유 프로팀의 박지성 선수의 포지션과 비슷한 셈이다. 

 준결승전에서는 내가 우리 팀 공격수에게 패스한 볼이 결승골이 되기도 했다. 어시스트 점수를 받은 셈이었다. 뒤이어 벌어진 결승전에서 우리 팀과 상대팀은 무승부로 연장전까지 갔다. 그런데, 내가 공격해 들어갈 때 상대팀에서 파울을 저질렀다. 우리 팀이 프리킥 찬스를 얻었다. 

 “와아!” 기회는 우리 팀에 안겨진 것이다. 프리킥을 아주 잘하는 우리 팀 선수가 공 앞에 섰다. 긴장의 순간이었다. 그걸 우리 팀 선수가 멋지게 성공시켰다. 우리 팀이 드디어 감격의 우승컵을 안은 것이다. 나는 정말 기뻤다. ‘내가 축구선수가 되어 우승의 기쁨을 맛보다니’

 그날 밤 우리 국의 전 직원 회식장소에서, 이재국장의 말씀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우리 장 경진씨는 키가 작고, 몸도 왜소하지만, 그리고 못하던 축구 핸디캡을, 조기축구를 통하여 극복한 참 훌륭한 사람이다.”

 다음해 봄철 시합에서도 이재국 팀이 우승하여 2연패를 달성하기도 하였다.


 직장을 신한은행으로 옮겨 와서도, 부서대항 체육대회에서 축구를 제법 잘하는 지점장으로 꽤 대접을 받았다. ‘학창시절 때 내가 물었던 국수 값을, 다시 홀∙ 짝 팀으로 시합하면 찾아올 수도 있을 텐데’ 라는 생각을 하면서 혼자 씨익 웃음을 지어본다.


  그때 내가 축구를 두 번해보고서, 축구하기를 포기했다면, 지금의 나는 축구나 운동은 아예 해보지도 못하고, 구경이나 하는 못난이로 살아가고 있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축구를 못하던 내가 그 당시 조기축구회의 창립멤버로 참가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가만히 생각해본다. 지금까지도 축구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 축구를 잘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연습하는 행동으로 연결되었다. 그리고 그 행동이 매일아침 연습에 참가하는 습관으로 바뀌었다. 그 습관이 꾸준히 3년 가까이 이어지다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축구를 잘 하게 되어 지금도 간혹 축구를 하면, 한 두골을 넣기도 한다. 무엇이든지 도전하는 자세만 있다면 불가능은 없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나는 두 번의 좌절 끝에, 포기하지 않고 단 한 번의 재도전으로 이루어 낸 것이 내 나름대로는 큰 자랑거리로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키가 165cm 밖에 안 되는데다, 체력도 형편없었던 나. 그러나 그 핸디캡을, 30대 초반에 조기축구를 통하여 체력을 향상시킨 나. 그리고 환갑이 지난 나이에도 축구를 잘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자랑스럽고, 크게 남는 장사가 아니겠는가! 가끔 나는 가만히 입속말로 중얼거려 본다. ‘키가 작다는 등의 육체적인 장애는 장애가 아니다. 불굴의 의지로 노력하면 모든 것은 이루어진다. 단지 정신적인 장애. 그것이 문제다.’


 한참 지난 지금도 그 당시의 추억을 더듬다보면 우리의 아들, 딸, 사위나 새싹처럼 커가는 손자들에게 까지도, 포기와 도전의 의미를 심어주고 싶다.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일에 겁 없이 도전해야 된다. 그게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결코 포기하지 말라. 또 도전하고... 계속 도전하면 꼭 이루어진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다. 도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한 모든 것은 이루어지기 마련이라는 것을!(2012.6.)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열시의 談禪 법회 [14] 관리자 2013.07.29 126784
공지 महानव십호장을 권합니다आश्रम [10] 책임교수 2012.07.12 132893
공지 महानव열 숟가락 운동आश्रम [40] 관리자 2012.11.20 170862
공지 자유게시판 사용안내 [11] 관리자 2012.05.05 151187
446 영남경전강독회 4월 모임입니다~ [11] 풍경소리 2016.04.27 5037
445 [인도][03] 전정각산 [4] 바람소리 2016.04.25 4506
444 [인도][02] 영불탑 - 가트 - 갠지스 강 [5] 바람소리 2016.04.19 4852
443 2016년 1월 - 초전 법륜지 사르나트 [8] 바람소리 2016.04.10 4554
442 영남경전강독회입니다~ [18] 풍경소리 2016.04.09 4828
441 선방에 계신 미륵보살님을 뵙고 왔습니다. [5] 바람소리 2016.04.02 4448
440 불영사 부처님을 뵙고 왔습니다. [5] 바람소리 2016.04.02 4347
439 시조 한 수 올립니다. [5] 백담거사장경진 2016.02.07 4939
438 두 갈래 길 [11] 책임교수 2016.02.06 6050
437 수증론을듣고 [3] 묘연 2016.01.26 4700
» 수필(포기와 도전) 1편 올립니다. [4] 백담거사장경진 2016.01.25 6334
435 새해 열심히 정진 합시다. [4] 법륜거사 2016.01.04 4728
434 지나감을 돌아보며 다가옴을 기약하며 [3] 부디스트 2016.01.03 4637
433 병신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 volvo 2016.01.01 4766
432 가는 해 오는 해_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요. [2] 평생공부 2016.01.01 4736
431 영화 인터스텔라에 나오는 딜런 토마스의 시 [7] 책임교수 2015.11.20 8973
430 기적의 금강 [4] 금강 2015.11.09 5151
429 담선 법회 변경과 명예 회원 위촉 [5] 책임교수 2015.10.23 6333
428 야채스프의 비밀 [3] 민경규원 2015.10.23 8271
427 만 20년 된 오불회 법회를 맞이하면서 [8] 백담거사장경진 2015.10.16 88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