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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01 22:57
III. 부뜨왈 공항의 안개와 싯달 태자의 출가
그런데 이번 여행의 반전은 끝나기로 한 12월 29일 월요일 날 일어났습니다.
네팔 직항 노선인 대한항공은 월요일 금요일만 운행했고, 그래서 12월 22일 월요일 아침 비행기를 타고 까트만두로 가서 29일 월요일 오후 비행기로 오는 일정이었습니다. 12월 28일 쿠시나가라에서 룸비니와 콜리야 국 사이에 위치한 부뜨왈까지의 길을 육로로 올라오면서 열반처와 관련된 생각을 정돈한 뒤, 다음날 29일 11시30분 비행기를 타고 까트만두로 가면 이번 여행은 만사 형통이었습니다. 체공 시간이 30분 정도 짧은 거리이니 12시에 까트만두에 도착해 점심 먹고 시내 관광을 조금 더 하고 4시 비행기 타면 딱 맞는데, 바로 “안개”가 모든 일정을 흐트려 놓았습니다.
부뜨왈 공항의 안개가 하루 종일 걷히지를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까트만두행 비행기가 결항되고, 육로로 이동할 시간은 이미 지나 버렸고 그러니 서울 오는 비행기 놓치고 만 것입니다. 그러면 금요일 곧 새해 1월 2일 비행기를 타고 1월 3일 새벽에 한국에 들어와야 하니 그간 밀린 일정 등 여간 문제가 아닌 상황이 발생한 것입니다. 그래서 급히 우회 항공기를 예약했고, 까트만두로의 이동은 어차피 다음날 안개 상황도 비관적이었으므로 육로를 택하였습니다. 그리하여 29일 아침 5시부터 일어나 기다리고, 비행기 연착 결항 기다리느라 오후 5시까지 허송하고, 겨우 오후 5시에 육로로 이동해서 3시간 달려 나라연가트에서 29일 밤을 지새고, 다음 날 30일 아침 9시에 출발해 오후 2시쯤 겨우 까트만두에 도착했고, 그 뒤로 9시간을 기다려 밤 11시 10분 중국 광저우 행 비행기를 타고, 31일 새벽 4시에 광저우에서 내리고, 다시 6시간 기다려 10시 40분 비행기를 갈아타서 31일 오후 3시 가까이에 인천 공항에 도착하여 입국 수속 밟고 집에 돌아오니 오후 5시였습니다.
부뜨왈 공항의 짙은 안개가 귀국시간을 무려 60시간 꼭 이틀 한 나절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우연히 그곳 숙소에서 만난 한국인 건설 감독의 이야기로는 부뜨왈 공항의 겨울 안개로 인한 결항율은 무려 50%에 달하기도 한다는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실로 안개로 인해 벌어진 이러한 갑갑하고 답답한 상황을 60시간 겪으면서, 나는 불현 듯 29세 된 싯달 태자를 떠올렸습니다. 부뜨왈 공항은 카필라 국에 인접한 지역인 셈입니다. 카필라↔룸비니↔부뜨왈↔콜리야의 위치이니까요. 아마도 2600년전 인도도 겨울철 이 시점에 안개가 자주 끼었고 이렇게 짙었겠죠.
어떨 때는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짙은 안개 속에서 싯달 태자는, 한 치 앞도 짐작이 안 되는 진리의 정체를 갈망하며 답답하고 갑갑해 했으리라고요. 진리의 정체를 발견하고자 하는 열망이 크면 클수록 갑갑하고 답답함은 증대되었고, 도저히 더 버틸 수 없어 출가를 결행할 수밖에 없으셨겠구나 하는 태자의 심정에 그 순간 감정이입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불현 듯 카릴라 성 폐허에 남은, 출가 시 통과한 동쪽 문 마하 아비니쉬크라마나 드와라(Mahābhiniṣkramaṇa dvāra)가 떠 올랐습니다.
북전 자료는 음력 2월8일이 출가일이고, 남전 자료로는 아살하월(6~7월) 보름날인데, 우리 전통인 2월8일로 하자면, 싯달 태자는 서너달 전부터 짙은 안개를 자주 만났을 것입니다. 그리고 29세 되던 해에는 그렇게 만나는 겨울 안개 속에서 답답함과 갑갑함을 느끼는 것이, 진리를 모르는 자신의 갑갑함과 답답함에 다를 게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터져 나오는 진리에 대한 열망은 도저히 막을 길이 없었고 결국 화산처럼 분출한 것이 출가였으니, 그분의 출가를 누가 막을 수 있었겠나하는 짐작도 아울러 들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60시간의 고단한 행로 속에서, 끝없이 자신에게 반문했습니다. 나는 과연 지금 상황에서 그렇게 답답하고 갑갑함을 느끼고 있는가라고요. 진리를 모르는 상황은 2600년 전 싯달 태자나 지금의 나나 같은데, 그분은 짙은 안개 속에 갇힌 듯 갑갑해 하고 답답해 하셨는데, 마치 나는 환한 햇살 아래인 듯 답답한 것도 갑갑한 것도 없이 지내고 있지 않나 하고요.
물론 우리에게도 갑갑하고 답답한 것이 왜 없겠습니까. 하지만 돈을 못벌어 갑갑하고 출세를 못해 갑갑하고 몸이 아파서 갑갑하지, 진리를 몰라서 갑갑하고 답답해 하지는 않지 않습니까. 그러나 잘 생각해 보세요. 돈을 벌고 출세를 하고 몸이 낫는 일은 갑갑해 하고 답답해 한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기도 합니다. 왜냐면 돈과 출세는 남과의 경쟁이 끼어들고, 몸은 무상함이 개입되니 혼자 잘한다고 되는 일이 원래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진리를 깨닫는 일은 남과 경쟁할 필요도 없고 무상의 본성을 두려워할 일도 아닙니다. 오직 자신의 무명 번뇌와의 싸움일 뿐이니, 그 갑갑함과 답답함으로 분발하여 자신을 조복받으면 틀림없이 끝나는 일입니다. 답답해 한다고 해결된다는 보장도 없는 세속적 일에 그만 답답해 하고, 답답해 하여 분발하면 반드시 해결된다는 보장이 있는 깨달음의 길에 나서는 것은 분명 나은 선택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늘 세속적 일은 답답해 하면서 진리의 깨달음과 관련해서는 답답해 하는 감각을 이미 잊어버린지 오래된 것 아닌가 하는 반성이 귀국 길을 계속 따라 다녔습니다.
나의 스승이셨던 고익진 박사님은 늘 경계하셨습니다. 가장 무서운 것은 “번뇌를 잃어 버리는 일이라!”고요. 지금 분명 진리를 모르고 어두운 무명에 사로 잡혀 있는데도 그런 무명 번뇌가 있는지 자체를 잃어버리고 잊어버린 채 살고 있는 우리를 경계하신 말씀입니다.
인터넷불교대학 마하나와 아슈람의 불자님들 법우님들!
오늘 또 한 번의 새해가 밝았습니다. 우리의 깨달음을 향한 여정에도 이제는 저 답답하고 갑갑한 안개가 벗겨지고 환한 깨달음의 태양이 밝게 비취기를 진정으로 열망하게 되는 첫날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 상황이 안개 속일 줄 모른다는 냉철한 현실 인식이 있어야겠지요. 아무쪼록 새해에는 저 짙은 무명 번뇌의 안개는 벗겨지고, 환한 깨달음의 태양이 오늘 새해 첫날 아침처럼 떠올라 밝아지기를 기원합니다. 나의 여행 일정으로 장로반인 오불회 12월 정기 법회는 오늘 새해 첫날로 잡혔거니와, 새해 첫날 첫 법회를 함께 가지면서 법우님 불자님들의 수행과 깨달음의 전도에 안개는 걷히고 태양 빛은 찬란하기를, 그들과 함께 기원하렵니다.
다 함께 정진하십시다.
2015.01.03 02:44
2015.01.03 23:32
귀국하시는 날의 고생이 많으셨군요. 오불회 법회때도 말씀은 들었지만 이렇게 고생하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사모님과 영애 진이의 고생도 눈에 선합니다. 그 긴 시간의 힘듬속에서도
그 안개를 부처님 재세시의 안개로 연결시키는 선생님의 불심과 두뇌에는 마냥 탄복할 뿐입니다.
힘든 일정 잘 마무리해주시고, 좋은 후기 깊이 감사드립니다.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2015.01.06 10:40
부뜨왈 공항의 안개로 인해 고생하셨고 또그 안개로 인한 자성!
저에게도 전염되었습니다.
가장 무서운 것은 "번뇌를 잃어버리는 일이다!"
부처님께서도 열반경에서 마지막으로 부촉하셨고 스승님께서도 늘 하시는 말씀, "정진하라."
늘 마음에 새기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보승합장
2015.01.06 10:41
부뜨왈 공항의 안개로 인해 고생하셨고 또그 안개로 인한 자성!
저에게도 전염되었습니다.
가장 무서운 것은 "번뇌를 잃어버리는 일이다!"
부처님께서도 열반경에서 마지막으로 부촉하셨고 스승님께서도 늘 하시는 말씀, "정진하라."
늘 마음에 새기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보승합장
2015.01.06 19:37
교수님 좋으글 .후기 감사합니다
한치앞도 모르는 우리의 모습에 늘 수행하고,정진하고,염불을 열심히 해야겠습니다.
교수님 건강하세요..
2015.01.08 19:38
교수님
새 해를 시작하며 한 번이나마 마음을 되잡을 시기에 주신 법문 감사합니다.
열반경 강의를 앞두시고 준비 하셨던 여행에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많은 고생하셨네요.
세간일에는 답답해 하면서 진리를 탐구하는 일에는 답답함을 갖지 못 하는 중생심에 대한 말씀에
심히 부끄럽습니다. 항시 마음에 새기면서 공부하겠습니다.
교수님의 강의에 대한 열정과 가르침에 또 다시 감사드립니다.
2015.01.10 20:14
새삼 자신의 무명번뇌를 잊고 살고 있는 나를 되 돌아 보고 다시 한번 깊이 바라봅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2015.01.19 08:10
분명 진리를 모르니, 안타까움에 밤잠도 설쳐야 하건만, 그냥
편안함만 찾는 나태함. 진리를 못 찾아서 번뇌해야 할텐데도,
사소한 번잡함에 묻혀사는 이 못난이 중생. 저 자신을 다시
한번 돌아봅니다.
2015.01.24 02:36
교수님의 글을 읽고 나니 반성되는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진정 갑갑하고 답답함을 느껴야할 대상이 무엇인지 뚜렷해집니다.
하지만 세간의 여러 번뇌들로 그 답답함이 무뎌지는 것 같아 제 자신에게 실망을 하게 됩니다.
세간의 번뇌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상황에서
번뇌를 수행의 약으로 삼으라는 교수님의 말씀이 더욱 와닿습니다.
갑갑하고 답답한 대상을 세간의 번뇌에서 저의 진실한 문제로 전환시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5.01.25 08:05
교수님의 네팔,인도여정을 접하고..카필라국의지정학적 위치
쿠시나가라 열반,싯달태자의 출가등에새로운 안목으로접근하시는교수님의 지난해 여정에
경의를 표함니다 이제 혜초가 못다한 꿈을 교수님의 팔리어 원전의정보와자료 지식위에서
새로운 사색의 출발를 기대합니다 백문불여일견 이랬는데 카필라 바스투의 동문길에서부처님의
체취를 느껴보고 싶습니다 답답하고 갑갑함 해소토록 노력하겠습니다
2015.02.09 08:34
교수님께서 인도 성지순례하신 기행문을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치밀하게 계획된 여정이라 글을
읽는 분들도 마치 부처님의 일대기를 직접 느낄 수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다음생에는 그곳에서 태어나서
광활한 평원과 높은 히말라야 고봉 속에마음껏 안겨보고 싶습니다.
더욱 진리에 대한 탐구에 매진하라시는 교수님의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교수님 노고가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값진 여행후기 감사드립니다.
2015.03.05 01:43
무명의 번뇌를 씻기 위해 정진하겠습니다 좋은 여행 되셨지요~~~ ^^ ()
2015.03.13 18:35
저희들을 위하여 긴글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깨어있으려 노력하겠습니다
부처님의 광명이 온누리에 가득하여지이다.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나무석가모니불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