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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29 01:57
서기 2013년은 불기 2557년이다. 서기는 예수님이 태어난 해를 기준으로 시작되고 불기는 부처님이 열반한 해를 기준으로 시작된다. 이것은 예수님이나 부처님이나 인간이었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종교적으로 일대기를 조명할 수도 있지만 인간적인 부처님의 생애를 조명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부처님은 아버지 정반왕(Suddhodana)과 어머니 마야(Maya) 사이에서 석가족의 왕자로 태어난다. 인도 북부지방 중 히말라야 산 가까운 지역은 쌀 농사가 잘 되는 지리적인 환경을 가지고 있다. 부처님의 아버지 이름에서 알수 있듯이 정반왕은 농사 잘 짓는 왕으로 해석할 수 있다. 석가족을 점령한 옛 코살라국은 지금의 인도와 네팔의 국경지역으로 네팔에 속하는 곳으로 지금도 쌀 농사를 많이 짓는 곳이다.
석가족은 아리아계 인종에 속한다. 인도에 이주한 초기 아리안들은 강가강 근처에 아주 비옥한 땅을 가진 지역에 정착하게 되고 그후에 인도로 이주한 아리안들은 점차 강가강에서 거리적으로 떨어진 곳에 정착하게 된다. 부처님은 히말라야 산 인근 지역에 정착한 것은 초기 아리안들에 비하면 1000여년 후에 인도로 이주한 후기 아리안 종족에 속하기에 강가강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게 된 것이다.
인도 관습 중 하나가 부인이 첫 애를 임신한 후 출산을 할 때는 친정에 가서 친정 어머니의 보호 아래 출산을 한다. 이 전통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마야부인도 이 관습대로 친정으로 출산하러 떠났다. 여정 중에 어느 동산에서 쉬고 있었는데 태기를 느껴 옆구리로 아들을 출산을 하게 된다. 친정 어머니의 보호 아래 출산을 하지 못하여 이 동산이 친정 어머니 역할을 했다고 하여 친정 어머니 이름을 따서 이 동산을 룸비니 동산으로 지정했다. 친정 어머니 즉 고타마 시타르다의 할머니의 이름이 룸비니이다. 그래서 고타마 시타르타는 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부처님의 탄생기에서 알수 있듯이 어떻게 사람이 어머니 옆구리로 태어날 수 있을까? 부처님의 일대기를 우화적으로 설명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그 시대에도 수술을 통해서 태어났을까? 이에 대한 해답은 인도 창조론에서 얻을 수 있다. 인도의 창조론에 의하면 창조신 브라마의 입에서 태어난 자는 브라만 신분을 상징하고, 옆구리에서 태어난 자는 크샤트리아 (인도에서는 차트리야라고 함) 신분을 상징하고, 다리에서 태어난 자는 바이샤 신분을 상징하고, 발에서 태어난 자는 수드라 신분을 상징한다. 그래서 고타마 시타르타가 어머니 옆구리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그의 신분이 크샤트리아 즉 왕족 신분임을 의미한다.
왕자로 살아가면서 화려한 삶을 살아온 시타르타, 16세 경에 결혼하여 라훌라(Rahula)라는 아들을 얻는다. 지금 인도 중앙정부를 통치하고 있는 콩커레스당 소니아 간디 당수의 아들도 라훌이다. 라훌은 국회의원이면서 당의 2인자로 활동하고 있다. 라훌라는 산스크리트식 표현이고 라훌은 힌디어식 표기이지만 같은 단어이다.
부처님이 왕자로 활동하던 그 당시 북부 인도에는 16개의 강대국들이 존재했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아리안들의 국가였지만 마가다국은 비아리안계들이 건설한 왕국이었다. 이 마가다국 영토에 철광산이 있었고 이 철을 이용하여 철기 무기를 생산할 수 있었다. 지금도 인도 철생산의 60%이상이 이 지역에서 생산되고 있다. 아소카왕도 이 지역 출신 왕으로 철 무기를 이용할 줄 아는 왕이었다.
부처님이 속한 석가족은 후기 아리안으로 부족 국가를 형성했고 코살라국이나 마가다국에 비하면 거대 국가는 아니었다. 부처님이 성장하여 성인이 된 시기에는 주변 강대국들에게 회유, 침탈, 전쟁 등으로 시국이 안정되지 않았다. 결국 석가족 국가는 코살라국에 귀속되었고 그 당시 왕권이 쇠퇴한 주변 국가의 왕자들처럼 부처님도 왕자의 자리를 포기하고 수행의 길을 선택했다. 이렇게 선택한 수행자의 길은 본인의 선택도 있었지만 주변 환경도 많은 영향을 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부처님은 29세의 나이에 모든 것을 버리고 수행에 매진하게 된다.
29세의 고타마 싣다르타는 수행의 길을 나섰다. 당시 북부 인도는 상업이 발전하여 신분제도 중 3번째 신분인 바이샤(상인) 신분이 부를 축척하게 되었다. 하지만 브라만교의 사회 아래에서는 부가 축척되어도 사회적으로 신분에 대한 존중을 받지는 못했다. 그래서 이들은 브라만교가 아닌 다른 사상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각종의 사상가들에게 경제적으로 지원했다.
고타마는 6년간 그 당시 유명한 사상가들에게 깨달음을 지속적으로 배웠고 연기법의 최고의 진리는 선정을 통해 성취하게 된다. 그의 나이 35세 때 일어날 일이었다. 그 후 녹야원에서 다섯비구들에게 첫번째 설법을 한 후 지금의 행정구역으로 나누어지는 우타르프라데쉬 주, 비하르주, 잘칸트 주를 유행하면서 깨달음을 전파했다.
고타마가 깨달음을 얻은 후, 고타마 싣다르타의 아버지 수도다나, 전 부인 야소다라, 아들이었던 라훌라, 동생인 난다 그리고 석가족의 많은 사람들이 출가했다. 또한 고타마의 사촌들인 아니룻다, 마하나만, 데바닷따, 아난다 등도 출가했다. 이들의 출가는 그 당시 석가족의 정치적인 입지가 약해졌다고 해설할 수 있다.
아나타핀다카(급고독장자), 고쉬따, 비샤카, 브라세나짓 등 이들은 붓다가 머물면서 법을 가르칠 수 있는 정사를 기증한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이들은 왕족이거나 상인계급임을 알수 있다. 부처님의 제자들 중 브라만 신분에 속하는 인물들은 많지 않다. 이것은 시대적으로 브라만교에 불만이 있고 권력이나 재력을 소유한 사람들이 붓다를 경제적으로 지원하고 이들은 불교의 깨달음을 통해 정신적으로 만족을 추구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지역적으로 보면 붓다는 카필라바스투, 스라바스티, 라즈기리, 부다가야, 바이살리 등 한국 국토면적의 약 5-6배 정도되는 지역을 유행하면서 45년간 깨달음을 전파했다. 이 지역의 현재 우타르프라데쉬 주, 비하르주, 잘칸트 주에 속한다.
붓다가 활동했던 당시 사회 현상을 보면 무역의 발달과 기술의 발달로 경제가 발전하면서 신흥 부유층이 형성되고 이들은 기존의 브라만 사상을 부정하고 신흥 사상이나 신규권력을 지원했다. 경제발전은 그 당시 브라만 중심의 사회 구조를 불교, 자이나교 등 신흥 종교 철학 중심의 사회 구조를 형성하는데 기여하게 된다.
2013.04.01 15:21
2013.04.02 01:09
안녕하세요
인도 고대역사에서 불교서적이나 불교이야기가 상대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인도 고대역사학자들은 대부분 불교서적을 공부하지요. 불교경전이나 서적에 그 당시 시대상황을
알수있는 자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 글은 종교적인 시각을 완전히 배제하고 시대적인
역사적 시각으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한국의 불교신자들에게는 생소한 접근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흔들림없이 불교정진하시길 바랍니다.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2013.04.02 15:05
빤디트님께 감사드려요
올려 주시는 글 정성스레 보고 또 봅니다
다음 편이 기다려집니다...^~^
2013.04.08 11:14
님, 역시 ...
넘 잘 읽었습니다.
자상히게 댓글까지 ...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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빤디트님~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부처님의 일대기를 인간적인 측면에서 조명하셨는데
수긍가는 점도 많습니다
그러나 부처님 출가 동기의 무게 중심을
당시 시대상황과 주변국가와의 관계에 두는 부분에선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