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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29 17:05
삶의 한 장면 한 장면이 경이롭게 느껴질 때가 있다.
어쩌면 우리의 모든 순간들이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요즈음 나는 컨디션이 다시 안 좋아졌다.
하지만 가끔 통화하던 후배의 우울한 듯 가라앉은 음성이 마음에 걸려 그녀와 약속을 잡고 충무로역으로 향했다.
충무로역은 3호선과 4호선이 겹치는 곳이라서 만나기로 한 1번 출구를 찾기가 어려웠다.
바로 옆에 에스컬레이터를 두고도 엉겹결에 지나치는 바람에 조금 지체하다 타게되었는데 뜻밖의 사고가 일어났다.
3분의 2쯤 올라간 상황에서 갑자기 몇계단 위에 있던 사람이 비틀거리는 듯 하더니 내쪽으로 날아왔다.
나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고 그의 머리가 내 얼굴에 부딪치더니 떨어지면서 그사람의 정수리가 보였다.
강한 부딪침으로 인해 중심을 잃고 밀려 내려가던 나는 간신히 손잡이를 잡았는데, 계단 아래쪽으로 굴러오는 그사람이 보였다.
순간 나는 내 등을 손잡이쪽으로 세차게 밀어버티면서 다리를 앞으로 내밀어 그를 막았다.
다행히 굴러오던 사람은 내 다리에 걸려 멈췄고 크게 다친 데는 없어 보였다.
가볍게 인사를 하고 오는데 비로소 윗입술에 통증이 느껴졌다. 입술은 많이 부었지만 앞니는 충격만 받았고 부러지지는 않았다.
내가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지체하지 않았다면 그사람을 만났을까?
내가 삼매에 드는 힘이 없었다면 그상황에서 위기에 대처할 수 있었을까?
후배와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그 에스컬레이터를 다시 타니 정말 경사도가 가팔라서 위험천만 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평소 삼매에 드는 습관이 있는 사람은 어떤 순간에 갑자기 시간이 아주 천천히 흘러간다.
순간순간이 마치 한 컷 한 컷 천천히 보인다.
그 덕분에 나는 침착하게 상황을 인지하며 내 몸도 다른 사람의 몸도 구할 수 있었다.
어제의 일을 겪으며 나는 매순간의 모든 장면들이 복잡한 인연과 업의 결과라는 실감이 들었다.
모든 존재와 업과 인연들이 씨실과 날실이 되어 펼쳐지는 파노라마.....
삶을 바라보는 내 마음에 알 수 없는 경외심이 일어난다.
스승님의 말씀처럼 온 우주가 떠받쳐주고, 과거 현재 미래의 일체중생이 도와줘서 지금 이 순간의 내 삶이 존재한다.
그러나 물보다 더 헤프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내모습이 보인다.
나는 언제쯤 인생을 허비하지 않는 사람이 될까.
2024.01.30 00:40
2024.01.30 10:22
저는 법명과는 반대로 어리석기 그지없습니다.
하지만 동자처럼 철 없이 사고치면서 하나씩 배워가겠습니다.
부처님과 스승님의 그늘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똑똑한 꼬마가 되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_()_
2024.02.03 00:41
법우님, 아차 하는 순간이었네요.
그리고 그만하길 다행입니다.
에스컬레이터 사고 엄청 무서워요.
삼매에 드는 행자이기에,
사고 나는 순간순간에도 놀라지 않고,
순간 동작들을 하나하나 포착하고 대처할 수 있었네요.
삼매의 힘이 위력을 발휘하는 순간이었네요.
어쨌든 조리 잘하시고 빨리 완쾌되시길 원합니다.
모두 건강합시다. ( )
2024.02.03 12:57
온 몸으로 온 힘을 다하여 위험한 상황을 막았다는 것인데,
몸이 얼마나 놀랐을까? 다행히 골절 문제는 없나 본데, 체크 해 봐야합니다
그 순간에 삼매의 힘이 발현 되었다니.....
역시 수승한 문수!!!
다음 부터 상담은 본인이 위험한 곳으로 가지 말고 꼭 "여주"에서 하기 바랍니다.
2024.02.09 13:43
항상 삼매에 들 수 있다니 대단하십니다.
후유증 치료 잘 하시기 바랍니다.
2024.03.06 12:57
뜻밖의 사고에 큰 일이 없으셔서 다행입니다.
그순간에도 그런 생각들을 하셨다니 대단하세요.
마지막 구절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인생을 허비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않습니다.
각자가 설정한 목표점이 다를뿐이며, 그 다른 잣대를 들이대기때문입니다.
빠른 쾌유를 빌어봅니다.
나무 지장보살 마하살 _()()_
문수사리 법왕자와 문수 동자! 두 호칭의 인도말은 같습니다. Mañjuśri Kumārabhūta이니까요. 법왕자로도 옮겨지고 동자로도 옮겨지는 말은 Kumāra입니다. 이 말은 우리말로 ‘꼬마’인 셈이죠.
문수보살은 권위를 내세우지 않습니다. 동자의 모습 꼬마의 모습으로 오히려 우리를 우러러 봅니다. 그러니 역설적으로 세상은 그를 법왕자라고 존경하는 것 아닐까요?
위에 글을 쓴 문수 법우는 참으로 문수 동자처럼 자신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그러니 역설적으로 세상은 그를 세울지언정 넘어뜨릴 수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가벼운 상처라도 잘 다스리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