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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9 00:28
해석 vs. 행동
인터넷불교대학 마하나와 아슈람 불자님 법우님들 안녕하세요.
나는 올해 설 연휴를 맞이하여 집안 일로 1주일정도 독일 베를린을 방문하고 돌아 왔습니다.
전반적으로 차분한 독일인의 분위기에 짧은 낮과 긴 밤 그리고 흐린 날씨들은 여행을 그다지 즐겁게 해주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한 곳을 지나치면서 참으로 기억에 남는 경험을 했습니다.
도시 한 가운데 작다고 해야 할 규모의 대학이 있었고, 그 정문을 들여다보니 인도의 간디 옹 분위기가 나는 조각상이 있어 “왠 독일에 간디?”라는 궁금증에 안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조각상에는 마하트마 간디라고 씌여 있는 대신에, “막스 플랑크”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그 순간 잠시 햇 갈렸습니다. 저 막스 플랑크가 그 유명한 양자 역학의 막스 플랑크인가라고요.
맞았습니다. 그 대학은 해당 개념을 처음 제창해, 20세기초 현대 물리학 분야에서 혁명적 변화를 일으켰던 양자 역학의 창시자 막스 플랑크가 학생들을 가르쳤던 대학이었습니다. 그리고 냉전 시절 베를린 대학으로 불렸던 훔볼트 대학이었습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첫 번째 만나는 2층의 중앙 복도에 이 대학의 유명 학자를 소개하는 사진들이 죽 걸려 있었는데, 내가 아는 학자만 해도 아인슈타인, 막스플랑크, 오토 한 등 기라성 같은 학자들 사진이 함께 배열되어 있었고, 저쪽 편에는 하이젠베르크 슈뢰딩거 같은 양자역학의 천재들이 역시 이 대학의 인물로서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는 이런 거장들이 실제 거닐었던 현장에 내가 시간은 달리했지만 그 공간을 같이 하여 걷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정말 꿈꾸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환승 시간까지 포함하여 14시간에 걸리는 장거리 비행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감동 속에서 캠퍼스를 응시하며 휴게 장소 같은 빈 공간에서 잠시 쉬며 앉아 있는데, 좀 전에 2층 계단으로 올라오면서 본, 정문 현관 정면에 새겨진 문장이 생각났습니다. 오늘날 세계사의 한 주축인 독일연방의 가장 중심 대학인 훔볼트 대학의 정문 현관 정면에 채택된 문장이라면 그 뜻이 자연히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Die Philosophen haben die Welt nur verschieden interpretiert, es kommt aber darauf an
sie zu verändern"(Karl Marx)
위의 문장은 이 대학에서 헤겔에게 철학을 배웠던 칼 맑스가 썼던 문장이었습니다. 해석을 보면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세계를 해석해 왔을 뿐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라고 일반적으로 옮겨 왔던 문장인데, 나는 그것을 “철학자들은 세상을 다르게 해석해왔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세상을 다르게 만드는 것이다.”로 옮겨 보았습니다.
처음 이 문장을 대하면서 이런 대학의 정문 현관에 아로새겨져 있을 만큼 이 문장이 그리 대단한가?하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관련 전문가들의 관점은 “맑스가 포이어바흐라는 철학자의 유물론에 동의하면서도 그의 유물론이 지나치게 관조적이며 실천의 문제를 놓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그의 철학에 대한 비판을 담은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들”(11번째)에서 위와 같이 말했다.”였습니다. 그러니 핵심은 관념이 아니라 실천이라는 말이었습니다. 맑스 말로는 해석이 아니라 행동이라는 것이죠.
나는 순간 참 의아했습니다. 막스플랑크는 흑체복사를 연구하다가 에너지 양자 개념으로 그 현상의 해석에 성공합니다. 아인슈타인은 우주를 연구하다가 상대성 이론으로 시간과 공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장을 엽니다. 이들은 모두 세상을 다르게 해석해 온 대표적 인사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오늘날 세상을 다르게 만들었고, 바꿔 놓았습니다. 말하자면 다른 해석이 세상을 다르게 만든 것이죠.
그런데 이 대학은 정문 현관 정면에 그것과 다른 색깔의 선언을 새겨 놓았던 셈이었죠. 중요한 것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고, 그렇게 세상을 바꾸려면 "해석"으로는 충분치 않고 결국 "행동"하는 데까지 가야 한다고 읽히게 하는 선언을요. 그러니 진정 중요한 것은 바로 "행동"이라고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세상을 바꾸고 자아를 바꾸는 원동력이 행동에 있냐 해석에 있냐를 두고요. 물론 바른 해석과 바른 행동이 세상을 바꾼다고 둘러치면 쉽습니다만, 내 의문은 둘 중 더 중요한 것을 택하라면 어떤 것이라고 해야 하느냐? 였습니다. 서열짓기를 좋아하는 버릇 때문에 해석이냐 행동이냐를 묻는 것일까요?
나의 이 고민은 오래지 않아 풀렸습니다. 나에게 있어서는 “바른 해석이 모자라느냐? 바른 행동이 모자라느냐?”고 물으면서 말입니다. 그러면서 아직도 나에게는 세상과 자아를 해석하는 데 실수가 많고 허점이 많구나 하는 반성이 마음을 가득 채웠을 뿐, 행동의 부족에는 그렇게 마음이 가 닿지를 않았습니다.
물론 그것은 나에게 행동과 관련해서는 충족되었음을 뜻하는 건 아닙니다. 나는 칼 맑스의 실천의 강조도 당연히 의미있다고 생각합니다. <화엄부> <<십지경>> 제3지 발광지 보살 단계에서 금강장 보살은 해탈월 보살에게 다음과 같이 일갈했잖습니까! “법에 있어 법에 따라 길에 듦으로써 이 부처님 법들이 성취되는 것이지, 말로 짓는 업을 청정히 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성취되지 않는다.” ‘말로 짓는 업’은 관념적 해석 작업이나 이론적 정보 획득 과정에 비유할 수 있고, ‘법에 있어 법에 따라 길에 듦’은 실천 행동 수행 등에 대응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해석에 배고프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었다는 말입니다. 아직 해석하지 못하는 것은 넘쳐나고, 아울러 너무나 해석해 내고 싶은 것들이 또한 넘쳐납니다. 나아가 해석의 각도를 조금만 달리해도 답이 보일 듯한데 그러지 못하는 것들도 넘치고 또 넘칩니다.
그래서인지 한국으로 돌아오는 내내, 양자 개념으로 세상을 새로이 해석한 막스 플랑크. 상대성 이론으로 우주를 새로이 해석해낸 아인슈타인. 양자의 세계를 입자의 관점에서 새로이 해석해낸 하이젠베르크. 역시 양자의 세계를 파동의 관점에서 새로이 해석해낸 슈뢰딩거. 저 거장들이 맛보았을 환희가 너무나 부러웠습니다.
그래서 올 한해에는 자아면 자아, 세상이면 세상, 불법이면 불법 등 그동안 성공적인 해석을 꿈꾸어 왔던 그 어떤 주제에 대해서라도, 하나라도 좋으니, 의미 있는 새 해석에 도달할 수 있기를 부처님 전에 간절히 소망해 보았습니다. 그래서 세상까지는 바꾸지 못해도 자아만큼은 조금 낫게 다스릴 수 있기를 기원했습니다.
인터넷불교대학 마하나와 아슈람 불자님 법우님들!
불자님 법우님들도 나처럼 새해석에의 열망을 지닌 분들이 계신다면 올 한해, 불법에의 새로운 해석의 특징을 지닌 우리 인터넷불교대학의 강의 정보를 통해 한 가지라도 보다 나은 해석에 성공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도인의 기틀을 이루기를 역시 기원합니다.
"아무쪼록 바라노니 다들 올 한해는 기필코 한 소식들 하십시다!"
2020.01.29 19:18
2020.01.31 00:59
*독일 건강히 일 잘 보시고 다녀오셨군요. 올 한해 내내 건안하시고
강녕하십시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 ( ) ( )
2020.01.31 01:47
정보에 대한 제대로 된 해석!
가슴에 깊이 새겨 정진하겠습니다.
나무 관세음보살 _()()_
2020.01.31 08:49
즐거운 독일 여행에 감축드립니다. 변화를 시키는 행동보다 정보에 대한
올바른 해석이 더 중요하다는 말씀 깊이 새기겠습니다.
관세음보살 () ()
2020.01.31 23:36
저도 요즈음 사유만 하지 않고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의 사유는 번뇌가 대부분이라...
부처님에 관해 많이 공부하신 교수님에게 와닿는 세상은 저의 세상과 많이 다를것입니다
여행지에서의 뭉클했던 문구 하나를 이렇게 또 공유해 주셔서 눈을 뜨게 해주시니 감사감사합니다_()_
2020.02.01 18:03
독일 여행을 건강하게 잘 다녀오신것을 감축드립니다
나무관세음보살 () ()
2020.02.01 22:00
하수상한 요즈음, 무사히 독일 다녀오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저명한 학자들이 강의했던 대학에 대한 자세한 설명 고맙습니다.
해석 vs. 행동?
그리고 그 대학에 걸려있던 저명인사들의 글귀를 보고 화엄경 내용을 생각하셨다니 대단하십니다.
이것보다 저는 부처님 말씀에 대한 정통한, 마하나와 아슈람의 강의가 더 가슴에 와 닿습니다.
그 강의 중 한 구절이라도 제것으로 만들어보려 합니다.
다시 많은 걸 생각하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 ( ) ( )
2020.02.02 11:42
선생님께서 올리신 글을 네댓번 숙독하고 나니, 깊은 해석과 행동에 대한 말씀을 좀 알 것 같습니다.
저는 한창때인 시절에도, 순발력이 늦어서 남들이 한 두번이면 할 수 있는 것을 , 저는 서너번 이상 하고나서야
깨닫는 지진아적 성향이 큰 것 같았는데, 나이가 든 요즘은 그 도가 더한것 같습니다.
전 솔직히 해석할 자신은 엄두도 못 내겠습니다. 죄송하지만 선생님께서 좋고 훌륭한 해석을 해 주시면,
그에 따르는 행동, 실천에 최선을 다했어면 하는 바람입니다. 나무관세음보살 ( )()
2020.02.03 15:29
'해석'과 '행동'을 둘로 나누기 보다는 조화시키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합니다.
관세음보살~~
2020.02.04 16:03
그토록 훌륭하신 거장들이 그 당시 불교에 귀의하지 못한 것은 많이 아쉽습니다.
인터넷 불교대학 <마하나와 아슈람> 의 강의를 통해 불법에의 새로운 해석법을 배워
"세상과 자아를 바르게 해석하는데 실천 행동 수행" 을 열심히 해서
저 거장들이 맛 보았을 환희심 을 저도 맛보도록 정진하겠습니다.
나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2020.02.05 19:01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2020.02.13 23:24
정진해야겠다고 늘 생각만 할 뿐, 사회적인 직분에만 매달려 있습니다. 스승님의 글을 보면서 올해는 조금이라도 더 깊어지고 달라져보자는 다짐을 합니다. 고맙습니다...
2020.02.26 11:19
항시 여행 시 경험을 불교론적 관점으로 해석하시고
저희들에게 새로운 시각과 사고를 일깨어 주시고 계십니다.
현재의 공부에서 한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 하는 상황에서
길을 잃고 있는 것 같아 불안하기도 합니다만
믿음을 갖고 오늘도 걸어 보겠습니다.
2020.02.28 00:52
감사합니다.
보다 정진토록 노력 하겠습니다
나무 관세음보살 나무 관세음보살 나무 관세음보살 () () ()
관세음보살 ()